성지 예루살렘 #2
예루살렘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모두에게 각기 다른 이유로 성지다. 수많은 곳이 성지고, 똑같은 장소도 서로 다른 배경과 이유로 신도들이 몰려든다. 그렇지만 몇몇 곳은 특정 종교를 위한 성지인데, 성묘교회(거룩한 무덤 성당이라고도 불린다)는 기독교를 위한 장소다.
이곳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그 시신이 묻혔던 곳으로 알려졌다. 즉 무덤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장소로 방문이 끊이질 않고 성당이 뿜어내는 아우라 또한 다른 곳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신성하다. 또 이 성당은 예수가 부활한 장소로 전해져 중요 성지 순례지로 그 자리를 공고히 했다. 신도가 아닌 여행자들에게도 성묘교회의 상징성은 너무나도 커 꼭 방문해야 하는 곳으로 꼽힌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내 일의 천박함을 느꼈다.
여행하는 동안 사진 찍는 행위에 거침이 없다. 특히 출장이면 더더욱 뻔뻔해지고 없던 친화력까지 생겨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이럴 수밖에 없는 게 여행지 정보는 그곳을 떠나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사진에 담아야 할 순간은 지나치면 상황 종료다. 따라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사진은 여행 중 승부를 봐야 한다. 꾸물거리고 주저할 새가 없다. 후보정을 하더라도 원본을 최대한 많이 갖고 있는 게 중요하니까. 결과적으로 개인 여행과 사진 수부터 다른데, 출장 땐 1일당 적으면 300~400장 많으면 600~700장 정도 찍는다. 그래야 잡지에 쓸만한 5~10장을 건질 수 있다. 의미가 없는 상황이라 생각되더라도 일단 찍고, 또 집중해서 돌아다닌다.
그러나 이곳 성묘성당에서는 사진을 찍으면 찍을수록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웠다. 어릴 때 교회에 잠시 몸 담았고, 20대부터 지금까지 여행을 다니며 수없이 많은 종교 관련 장소를 들락날락했지만 어느 곳도 성묘성당보다 강렬한 신도들의 믿음과 간절함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카메라를 들이미는 나를 한없이 비루한 존재로 만든 그들의 태도가 지금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나의 셔터와 상관없이 진심을 다해 기도하고 뜨거운 눈물 흘리는 그들의 모습 말이다. 성당에 발을 들이고 20컷 정도 찍었을까, 마음에 들지 않을뿐더러 더 이상 찍을 자신이 없어 자리를 옮겼다. 그저 방관자에 입장으로 성당을 서성거렸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미묘한 감정은 더 강하게 피어올랐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 한 순간과 마주해 생긴 불편함과 내 직업에 대한 천박함을 맨 정신으로 견딜 수 없었고, 속도 메스꺼웠다. 관광객들이 초에 불을 켜며 인증샷을 찍어내는 모습만 애꿎게 찍어대며 마음을 추슬렀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안정을 되찾았지만 더 이상의 사진 촬영은 없었다. 아니다. 일부러 찍지 않았고, 잡지에 올릴 자신도 없었다. 방해꾼이 되기 싫었다. 주어진 나머지 시간은 속죄하는 마음으로 성묘성당을 걷고 또 걸으며, 그들의 진정성을 최대한 가슴속에 담았다.
성묘교회를 떠나고, 예루살렘 일정을 마무리할 때 즈음 동행했던 분에게 심적 부담감을 털어놓았다. 그는 처음엔 그럴 수 있다며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많은 조언을 건넸다. 그럼에도 이러한 상황을 또 마주하면 일로서 이겨낼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쉽사리 답할 수 없다. 이스라엘을 다녀온 지 반년이 훌쩍 넘은 지금, 이 글을 쓰는 4월30일 새벽까지도 그 답을 찾지 못했다. 그저 방관자로서 그들의 신앙심을 지켜보는 게 맞는 걸까, 아니면 일반적인 상황처럼 소통하며 그들에게 내 진정성을 보여주면 다가가야 하는 걸까.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