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해 #1
여행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스라엘 중부 지역인 사해로 내려가며 첫 번째 목적지로 들렸던 엔게디 국립공원(Engedi National Park). 차에서 내리자마자 내리쬐는 햇빛에 눈 뜨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얼마나 날이 푹푹 찌던지 물 없이는 한 걸음도 내딛기 힘들었다. 우선 엔게디는 히브리어로 오아시스(우물)의 ‘엔’과 새끼 염소의 ‘게디’를 합해 ‘새끼 염소의 우물’이란 뜻이다. 엔게디는 동굴과 샘이 발달한 오아시스인데,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이 이 근처 동굴에 피신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고. 지금은 국립공원 및 자연보호구역으로 정해져 있으며, 곳곳에 동굴과 샘이 있어 많은 여행자들이 수영복을 챙겨 와 더위를 식히기도 한다. 1~2시간 이상 등산하며 도딤 동굴(Dodim Cave)과 금석병용기 사원(Chalcolithic Temple) 등의 장소를 만날 수 있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다면 다윗 폭포까지만 가도 이곳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너무나 뜨거운 날씨에 엔게디 초입부터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걷다 보니 의외로 수월했고,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 덕분에 마음이 누그러졌다. 게다가 지나가는 사람들과 인사하고 짧은 담소를 나누는 것도 큰 힘이 됐다. 8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이스라엘로부터 받은 게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스라엘 여행은 여행기자로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줬는데 바로 '소통의 즐거움'이다. 낯가림이 심한 내가 좀 더 수월하게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용기를 줬고, 사람들과 호흡하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만들어줬다. 영향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스라엘 이후로 다녔던 출장과 개인 여행 모두 이전보다 풍성하고, 따뜻한 시간으로 채워졌으니 말이다.
올라가는 동안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목적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뿐. 빨리 오아시스를 만나고 싶은 생각에 속도를 냈다.
1시간 정도 걸었을까. 다윗 폭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작은 폭포였는데 이곳을 채우는 것도 결국 사람이었다. 남매와 아빠가 시원하게 물놀이를 하고 있는데 그저 바라보는 나마저 흐뭇해지고, 같이 놀고 싶었다. 철없는 내 마음 꾹 누르는 게 여간 어렵더라. 그저 주위를 맴돌며 아이들과 눈 맞추고 사진을 찍는 걸로 아쉬움을 달랬다. 아이들의 밝은 웃음, 그리고 아이들의 모든 장난에 장단을 맞춰주는 좋은 아빠. 행복한 순간을 마주하고 있으니 인생의 한 페이지를 결혼으로 채우는 게 어떤 의미인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발걸음을 돌려 하산하는 길에 만난 또 다른 가족. 여기도 행복, 저기도 행복. 아이들이 주는 행복이 얼마나 클까. 아직까지는 상상에 그친다. 이 날 유독 빛이 좋아 사진까지 때깔이 좋다. 거기에 아이들의 웃음이 더해지니 내 여행도 빛날 수밖에. 무더운 엔게디가 이토록 즐거웠던 건 다 이들 덕분이다.
이제 사해를 만날 시간이다.
누르스름한 유대 광야가 지루해질 때 즈음 눈앞에 옥빛과 파란빛이 뒤섞인 영롱한 바다, 사해(Dead Sea)가 창밖으로 펼쳐진다. 강력한 염분으로 유명한 이스라엘의 해변, 첫 만남이 있기 전까지 그 이름을 계속 들었다. 그러나 한 번도 찾아볼 생각을 안 했기 때문에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몰랐고 감도 잡을 수 없었다.
그만큼 무방비 상태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사해는 그저 놀라웠다. 창문 너머로 사해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가이드의 말에 고개를 돌렸고 그 어떤 에메랄드 해변보다 영롱한 빛에 저항할새 없이 홀려버렸다. 태어나서 바다를 처음 본 그때만큼 사해도 떨리고 흥분되는 순간이었다. 매년 8월이면 사해가 떠오를 것 같다.
자유여행이었으면 오후 내내 사해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을 텐데, 해외 출장이니 다음 스케줄을 소화하러 이동했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 지프투어. 사실 출장의 묘미는 이런 거다. 취향과 전혀 맞지 않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 막상 해보면 괜찮은 것들을 체험할 수 있다. 지프투어도 평소라면 전혀 응하지 않으나 일이니까.
결과적으로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돌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감상했던 시간. 마치 화성에 와 있는 듯한 기분마저 느낄 수 있었다.
강 건너 요르단도 엿보고..
혼자 우두커니 서 있으며 바라보던 시선을 그대로 담았다. 약간 울적한 기분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묘한 설렘이 공존했다. 지구가 아닌 다른 우주에 서 있는 것처럼.
다시 사해로 돌아왔다. 저녁 식사가 예정돼 있었지만 일몰 시간의 붉은빛 사해를 놓칠 수 없다. 왜냐하면 오늘이 마지막 저녁이니까. 한 번 놓치면 언제 만날지 모르는 순간인데 저녁식사가 대수랴.
마지막 아침, 사해 입수를 위해 아침 일찍 방을 나섰다. 사해는 염분 농도가 약 26~33%로 5%의 보통 해수보다 6배에 달해 생물이 살 수 없는 바다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사실, 보이는 아름다움 때문에 죽음의 이미지가 도통 떠오르질 않는다. 사해의 모습에 홀려 바다에 들어가 몸을 맡기면 염분의 높은 밀도 덕에 가만히 있어도 물에서 둥둥 뜬다. 단, 염도가 강하기 때문에 얼굴을 바다에 담그는 등의 행동은 피해야 한다. 그것보다는 바다에서 독서를 하는 등 한껏 여유로운 포즈로 인증샷을 남기는 게 여행의 포인트. 게다가 사해 주변의 진흙은 미용 효과가 뛰어나 이를 활용한 화장품도 있다고 하니 선물로 구매하면 좋겠고, 근처 호텔에서 진흙 마사지를 받는 것도 사해를 만끽하는 방법이다.
진짜 마지막 날이다. 엔게디와 함께 사해 연안에 있는 대표적인 명소, 마사다(Masada)로 일정의 마침표를 찍게 됐다. 마사다는 황야와 사해를 발아래 둔 천혜의 요새다.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상징인 이곳은 헤롯 대왕이 요새화했으며, 로마군의 공격에 맞서 997명의 유대인들이 항쟁을 펼쳤던 유적지다. 마사다는 유대인에게 저항의 심벌이기도 하다. 그들은 마사다가 정복되자 로마군의 노예가 되는 것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했기 때문. 이곳 마사다에서 유대인이 끝까지 항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수도 시설 때문이다. 단 하루 동안 내린 빗물로 2~3년 동안 1,000여 명에게 식수를 제공할 수 있었다고.
이제는 덩그러니 터만 남았지만 그들의 혼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다.
또 마사다는 목숨을 걸고 로마군에게 대항한 공간이지만 미에 대한 그들의 철학도 볼 수 있는 곳이다. 위 사진에서 3층으로 나눠진 것을 알 수 있는데, 바로 테라스 3개가 있는 궁전의 터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화려한 디자인과 정교한 설계를 해낸 헤롯 대왕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마사다를 끝으로 모든 일정이 끝났다. 이 뒤에 점심 식사를 위해 베두인 지역으로 갔는데,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이 또 한 번 내게 준 선물 같은 시간을 통해 풀어볼 예정이다. 처음 출장 제안을 받았을 때 5시간 동안 고민하며 갈까 말까 결정해야 했던 이스라엘. 가지 않았으면 보지 못 했을 모든 것에 대해 언제나 감사하다.
이스라엘을 통해 세상 보는 눈을 넓혔고, 사람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배웠다.
내게는 세상과의 연결통로로 기억될 이스라엘.
그리고 잊지 못할 나의 첫 중동, 이스라엘. 언제나 고맙고, 또 만나게 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