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프랑스 #1 니스
5년 만에 다시 찾은 프랑스. 폴 빵집을 보니 프랑스에 왔음이 확실해졌다. 샤를드골공항을 구석구석 둘러보고 이제 첫 목적지인 니스로 향한다. 니스가 휴양지로 명성이 대단한 만큼 그 기대감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다.
니스의 저녁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그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공항에서 니스 중심가로 이동하면서 어두컴컴한 밤거리를 뚫고 들려오는 것은 파도 소리뿐이었다. 성수기가 아니었던 탓일까. 3월 어느 날 저녁의 니스는 무서울 정도로 삭막했다. 공기는 차가웠고,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드문드문 영업하고 있는 레스토랑에서나 사람들의 인적을 느낄 수 있었다. 사전 조사가 부족했는데 무턱대고 기대감만 높았던 나 자신을 탓했다. 그래 니스는 잘못이 없다. 그럼에도 실망감과 아쉬움이 뒤섞인 마음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고, 밤거리를 헤맸다. 조금이라도 멋진 곳을 찾기 위해 자정까지 쏘다녔지만 결국 허탕 치며 숙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나마 아쉬움을 달래준 것은 해변을 마주 보고 있는 호텔. 내일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도 없이 출장 온 사람으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 5시50분에 알람을 맞추고 잠자리에 들었다. 니스 일출이라고 뭐 다르겠어?
"잊지 마요 니스의 아침을"
때로 무언가를 보고 한 번에 단정 짓는 경우가 있다. 식당에서는 단 한 번의 식사로, 사람은 단 한 번의 만남으로 그들의 색깔을 규정하는 경우가 있다. 섣부르다 생각하지만 처음으로 입력된 모습은 강하게 영향을 미쳐 두 번째 만남을 허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색을 드러내는데 필요한 시간은 각기 다르다. 첫인상이 강렬하지만 뒤로 갈수록 흐릿한 것도 있고, 처음은 지지부진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매력을 피워내는 것도 있다. 니스를 통해 또 한 번 첫인상은 단순히 처음에 그친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인상이 전부는 아니다.
오전 5시50분 알람이 울리자마자 눈을 떴다. 전날 미리 찾아놓은 일출 시간에 맞춰 고양이 세수를 하고, 모자를 뒤집어쓰고 호텔 앞으로 나간다. 이전까지 봐오던 주황색 일출이 아니라 보라색이 니스를 감싸고 있다. "이게 뭐지? 일몰 시간인가?" 해가 떠오르기 직전 보랏빛과 분홍빛이 니스의 해변과 뒤섞여 마법 같은 시간을 선사했다. 어제 느꼈던 삭막함은 온데간데없고, 황홀함만이 남은 니스가 여행자를 반겼다. 지금까지의 차가움은 이런 극적인 순간을 위한 연출이었나. 얼떨떨했다. 수많은 일출을 봤는데 이런 색감은 처음이었다. 놀란 가슴 진정할새 없이 주변을 돌아보고 또 돌아봤다. 니스의 아침과 대면하고 이번 남프랑스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니스를 다녀온 후 만나는 사람들에게 니스 갈 일 있으면 일출 시간부터 검색하라고 신신당부한다. 꼭 일출 10~15분 전에 나가라고. 니스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 황홀함을 경험해 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말이다.
보랏빛이 가시기 시작하면서 주황빛이 고개를 들이민다. 니스의 아침은 몇 가지 색을 가지고 있는 건인가.
7시가 넘어서자 니스는 주황빛으로 물들여졌다. 아침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 나처럼 일출을 감상하는 여행자들이 한데 모여 니스의 아침 풍경을 만들었다. 영국인 산책로로 잘 알려진 7km의 해안가 도로 ‘프롬나드 데 장글레(La Promenade des Anglais)’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니스의 아침을 만끽했다.
호텔로 돌아와 크루아상과 바게트, 팽오쇼콜라, 오믈렛, 샤퀴테리, 오렌지 쥬스, 에스프레소 등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본격적으로 니스의 구 시가지(Vieux Nice)로 발걸음을 옮겼다. 해변을 따라 알베르 1세 정원과 오페라 극장을 지나면 꽃, 과일, 기념품 등을 파는 활기찬 장터가 눈에 들어왔다. 마켓 곳곳에 니스의 풍경과 캐리커쳐를 그려 주는 예술가들이 있으니 갤러리에 들른 것처럼 구경을 하거나 니스를 추억할 만한 기념품을 사는 것도 좋다.
사실 구 시가지만 보더라도 24시간이 부족하지만 생 레파라트 성당(Cathedrale Sainte-Reparate)을 관람하고, 바로 앞 유명 젤라또 가게에서 만다린 맛 젤라또를 즐기는 여유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시간이 부족해 놓쳤지만 조금만 더 힘을 내야 할 이유가 있다. 니스성 언덕길을 오르면 니스 해변과 구 시가지를 한눈에 담을 수 있고 ‘I LOVE NICE’에서 인증샷을 남길 수도 있기 때문.
니스 골목도 프랑스 여느 골목처럼 상당히 운치 있다. 형형색색의 집들과 어울려 사진 남기기 좋은 스폿이다.
오후가 되면 우리가 익히 들어온 니스 해변이 눈앞에 펼쳐진다. 하늘을 담은 바다. 하늘과 바다가 대칭을 이룬다. 어쩜 저리 아름다운 하늘색과 해변이 있는지 연신 감탄하게 된다. 니스의 명성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바다를 거닐 수 있다. 해변가에 위치한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고, 그냥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시간을 흘려보내도 좋다. 니스는 어떠한 여행 방법도 존중받을 수 있는 그런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