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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균 여행기자 Jan 13. 2019

베드로도 다녀간 항구도시

지중해빛 텔아비브(Tel Aviv) #2

고층빌딩과 화려한 삶이 가득한 텔아비브에서 만난 야파(Jaffa)

오래된 시간을 간직한 항구도시로 특유의 분위기가 있고,

베드로와 얽힌 이야기가 있어 성지로도 유명하다. 

길을 잃어도 좋을 골목에서 쉼 없이 걸었던 하루다. 

야파의 골목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야파의 입구라고 할 수 있는 시계탑. 1901년에 지어진 야파의 상징과 같은 시계탑은 터키 국왕 술탄 압둘 하미드 2세의 제25주년 기념일에 오스만 제국 전역에 세워진 100개의 시계탑과 이스라엘에 지어진 7개의 시계탑 중 하나다. 이 시계탑을 지나면서 야파가 시작된다.



텔아비브 중심가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역사적인’이라는 수식어가 어느 도시보다 잘 어울리는 야파(Jaffa)는 나름의 매력으로 전 세계인을 끌어 모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항구 도시 가운데 하나인 야파는 BC5000년 즈음의 유적도 발견됐다고 한다. 또 야파라는 이름이 지어진 뒷 이야기도 사뭇 종교적인데, 노아의 세 아이들 중 막내인 야펫이 거주하기 위해 만든 곳이라는 설이 있다. 이래저래 이곳을 거닐다 보면 무엇이라 설명할 수 없는 기운이 내 몸을 휘감는다.


나폴레옹 형상의 표지판<오른쪽 사진>이 길을 안내한다.


야파 여행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올드 시티는 종교와 관련된 일화들이 다양하다. 그중 베드로가 환상을 봤다는 일화가 가장 유명하다. 베드로는 야파에서 기도 중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이 담긴 환상을 본 후 가이사랴에서 온 로마인 고넬료를 만나게 됐으며 그에게 세례를 주게 된다. 즉, 야파는 이방인에게 복음이 퍼지게 된 역사적인 사건의 시발점이 된 지역이다. 베드로 환상교회와 베드로가 머문 피장 시몬의 집, 요나의 고래를 형상화한 동상 등도 이곳에 자리한다. 또한 나폴레옹이 1799년 이집트를 점령할 때 이곳을 지나갔다 하여 길을 걷다 보면 나폴레옹 형상의 표지판도 보인다. 



올드시티에서 내려오면 야파 플리 마켓(Jaffa Flea Market)을 방문해야 한다. 이곳에서는 다채로운 기념품과 액세서리, 의류 등을 만날 수 있고, 플리 마켓 주변으로 먹자골목이 형성돼 있어 식사를 해결하기도 좋다. 특히 야파의 명물로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해외 매체에서 방문한 닥터 샤슈카의 매콤한 샥슈카(Shakshouka)를 맛보면 한식에 대한 갈증을 풀 수 있다. 

닥터 샥슈카 사장 비노의 안내로 맛있는 샥슈카가 만들어지는 주방을 열심히 둘러볼 수 있었다. 더군다나 우리가 먹을 메르게즈 샥슈카(양고기 소시지가 들어간 샥슈카) 8인분을 터프하게 조리하는데 그 냄새가 정말 정말 기가 막혔다. 처음에는 마늘과 고추를 기름에 달달 볶아 향을 불어넣고, 양고기 소시지로 무게감을 더한다. 이후 토마토 15개를 같이 볶고, 토마토에서 충분히 수분이 나오면 고춧가루와 파프리카 가루 등 다양한 향신료를 넣는다. 마지막으로 계란도 듬뿍 넣어주고 팔팔 끓이면 완성. 

사실 샥슈카라는 음식을 해외에서 처음 먹어보는 거라 맛이 전혀 상상이 가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정말 정말 정말 정말 맛있다.

요게 1인분씩 조리한 샥슈카다. 이걸 맛보지 못해 정확한 비교는 힘들겠지만 8인분에 비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왼쪽에 보이는 게 메르게즈 2~3인분 될 것 같은데 우리 프라이팬은 저거 3배는 됐다. 우선 투박한 빵을 한 번 더 찢어 접시에 놓고, 양고기 소시지와 토마토, 계란을 푹푹 떠서 예쁜 한 그릇을 만든다. 이후 정신없이 먹으면 되는데 이 맛이 우리의 육개장, 닭볶음탕의 매콤함이 스치면서 양고기 특유의 향도 같이 난다. 거기에 반숙 계란이 부드러움과 토마토의 신맛이 가세해 맛의 방점을 찍는다. 이 맛을 온전히 기억하고 싶어서 배가 불렀음에도 멈출 수가 없었다.


야파는 100년 이상 된 돌들로 지어진 건물과 아트 갤러리, 아기자기한 상점가 등 걷기만 해도 여행이 되는 곳들로 꽉 차 있으니 식사 후에도 야파의 플리마켓을 부지런히 돌아다니자. 누가 알겠는가. 자신의 잇템을 12시간 거리의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만날 수 있을지.

플리마켓에는 수많은 골동품이 있다.


이밖에도 소망의 다리(Wishing Bridge) 너머에 있는 공원에서 텔아비브 해변을 감상하는 것도 빠트리지 말자. 또 조금 아래로 내려와 해안가를 따라 걸으면 톡 튀어나온 안드로메다 바위(Andromeda Rock)가 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이 바위는 야파 왕이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화를 누그러트리기 위해 자신의 딸 안드로메다를 돌에 묶어 제물로 바쳤던 곳이다. 


23km에 달하는 텔아비브의 긴 해변

텔아비브 항구에서 열리는 까발랏 쉐밧의 지역의 명물이다. 


다시 텔아비브 중심가로 들어왔다. 금요일 일몰 때면 안식일 예배를 진행하는데 그걸 보기 위해서다. 일반적으로 교회나 가정에서 많이 진행하지만 텔아비브 항구에서는 까발랏 쉐밧(Kabalat Shabbat)이라고 야외에서 진행해 신도들 뿐만 아니라 관광객들도 함께한다. 주로 공연과 기도가 병행돼 축제 같은 분위기를 낸다.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간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상당히 성공적인 행사다. 게다가 일몰 시간에 진행돼 성스러운 느낌이 더해진다.  


신도가 아니더라도 자유롭게 즐기는 분위기가 형성된 축제의 장


일반적인 안식일 예배의 경우 가정집에서는 어머니나 큰 딸이 주도한다. 가이드분에 따르면 이스라엘 달력에는 안식일의 시작과 끝이 다 표시가 돼 있다고. 우선 가정 내의 초에다 불을 붙이면 안식일이 시작되고, 의식을 진행한 뒤 안식일 식사를 한다. 반면 남자들은 회당에서 예배를 드린다. 유대인 성인 남자의 예배는 의무라고. 또 어머니는 남편과 자식을 회당에 보내는 게 순리라고 한다. 결국 이스라엘에서는 여성은 집안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게 가장 주요한 역할인 것 같다. 

재밌는 점은 휴가나 여행을 갔다고 해서 안식일 예배를 건너뛰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호텔도 회당이 있는 곳으로 간다고..


단순한 크레인으로 생각했는데 역사적 유물이라고 한다


그렇게 텔아비브의 마지막 날이 저물어간다. 날이 좋아 제대로 된 일몰을 감상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스라엘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일몰 감상이었는데 너무나 강렬해서 마음 한 편이 뭉클해지기까지 했다. 이스라엘 하면 떠오르는 두려움도 구름 너머로 사라지는 해처럼 점점 더 옅어졌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사라져 가는 해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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