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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담 Apr 29. 2021

글짓는 부엌

인트로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낡은 타운하우스 꼭대기층. 한국식 면적으로는 열댓평쯤 되어보이는 작은 집에 사람 세명과 고양이 한마리가 살고있다. 방이 2개, 거실겸 부엌인 공간이 하나, 욕실 하나, 그리고 두어평 되는 테라스가 있다. 세탁기는 없는데 오븐은 쓸데없이 크다. 화장실 창문이 방에 있는 창문이랑 똑같아서 햇빛도 잘 들고 바람도 잘 통한다. 과하도록 잘 통한다. 집은 좁은데 벽장도 방마다 하나씩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미스테리한 구조다. 그런곳에서 살고있다. 


뉴욕에서 10년을 살면서 몇번 이사도 다녀보고 남의집에도 가봤지만, 뉴욕시내는 전반적으로 집이 좁고 불합리한 구조인 집이 많다. 워낙에 물가가 살인적이다 보니 집을 비인간적으로 붙여짓기 시작했다. 맨하탄에는 창문을 열면 바로 옆집 벽이 코앞(문학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 실제로 코앞)인 집도 많고, 원래는 한채였던 집을 무리해서 두개 세개로 쪼개놓은 집도 많다. 그럼에도 뉴요커들은 집에 큰 불만이 없다. 집 밖에 나가면 공원, 카페, 클럽... 갈곳이 많고 할일도 많아서 집에서 크게 시간을 보내지 않기 때문이다. 

"주말에 뭐했어?" 라는 질문에 "그냥 집에 있었어" 라고 답하면 어디가 아팠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뉴요커들은 집에 잘 붙어있지 않는다. 


열댓평짜리 작은 집에서 세명이 살고 고양이도 한마리 키운다고 하면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나 친구들은 다소 측은한(?) 눈빛을 보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불만도 없었고 불편도 없었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 사태로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다. 

음식점들은 물론 소규모 공원까지 폐쇄를 해버리니 집 말고는 갈곳이 없어졌다. 설상가상으로 학교도 직장도 닫고 집에만 있으라고 (stay home) 한다. 열댓평짜리 집이 갑자기 성냥갑처럼 답답해지기 시작한다. 자고 일어나면 집이 더 작아져있는것만 같다. 한 두어달 그러다가 끝나겠거니 했더니 정신을 차려보니 1년이 뚝딱 지나가있었다. 


나는 현대사회가 가진 많은 문제 (예컨대 폭력, 증오, 자살같은 것)의 원인은 두가지라고 생각하는데, 그 악의 근원 첫번째는 다이어트고 두번째는 아파트라고 생각한다. 무리한 다이어트로 심신이 피곤한 상태,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탄수화물이 배제된 식단은 사람을 폭력적으로 만들고, 비정상적으로 밀집해 사는 아파트가 그 폭력성에 불을 붙이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농담이 아니라 열댓평짜리 집에 사람 세명과 고양이 한마리가 근 일년을 갇혀살다보면 싸움이 끊이질 않는다. 피를 나눈 가족도 밀집되면 이렇게 서로 화를 내는데, 남과 천장과 마루를 맞대고 살다보면 싸움이 나는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싶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3인 1묘가 열댓평에서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한 방법으로 별도의 협의를 한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시간제 교대근무 방식을 취하게 되었다. 아침에 해가 뜨려고 밖이 밝아오면 가장먼저 고양이가 일어나 사료를 먹고, 아득아득 사료 씹는 소리에 6살 어린이가 일어난다. 그때부터 어린이는 거실에서 싱글라이프를 즐긴다. 20대 독신여성인가 싶을 정도로 자기의 시간을 즐기는데, 잔소리쟁이 어른들이 깨지 않도록 자그마한 소리로 만화영화를 하나 틀어놓고, 평소에 엄격하게 금지시키는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비스켓 먹기'를 시전한다. 그렇게 삼십분정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면 알람이 울리면서 내가 일어나 거실로 나오고,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도시락을 싼다. 어린이와 둘이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걸어서 3분도 안 걸리는 거리에 있는 학교에 데려다주고 나면 그때부터는 나의 싱글라이프가 시작된다. 커피도 한잔 더 내려서 마시고, 남의 글도 읽고 내 글도 쓴다. 사진을 정리하거나 가벼운 업무도 처리하다보면 느즈막히 남편이 일어나서 나온다. 아침형인 나와 다르게 야밤형인 남편은 식구들이 다 잠든 후 빈 맥주캔과 안주의 흔적을 대량생산하며 축구를 보는 것으로 싱글라이프를 즐긴다.


이 글은 주방겸 거실을 내가 차지하는 시간에 쓰는 것이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나는 매일 아침 가스불에 밥을 지어 남편의 도시락을 싸는 생활을 7년동안 했다. 1년이 지나도록 재택근무중이라 이제는 새벽밥을 짓지 않지만, 그 부엌 식탁 위에 노트북을 펴놓고 글을 짓는다. 

블로그도 SNS도 이미 해봤으니 남앞에 내 글을 내놓는것이 처음도 아니건만, 브런치는 왠지모르게 거창한것을 시작하는 기분이 들어 첫 글이 쉽게 써지지 않는다. 썼다 지우기를 몇번이나 반복하다 저만치 치워버리기를 또 몇달 하다가, 이러다간 영영 시작도 못 하고 끝날것 같아 두서없이 적어내려간다. 잘 차려진 정찬요리가 코스로 나오는것같은 그런 글은 아니더라도, 지난 7년간 해왔던 새벽밥처럼, 졸음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면서 일단 가스에 불부터 붙였던것처럼, 그렇게 적어나가다보면 그야말로 밥이든 죽이든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밥 대신 글을 짓는 부엌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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