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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담 Apr 29. 2021

문짝만 호텔같았던 뉴욕에서의 첫 집

열쇠 이야기 - 1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은 세계 어디를 가도 "속도"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인터넷이 그렇다는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인터넷이 빠르기만 빠른게 아니라 전국 어딜가나 빵빵 터지는게 내 입장에선 더 신기한데 심지어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도 와이파이가 터진다고 하면 기함을 할 노릇이다. 뉴욕에서는 달리는 지하철내부에 와이파이는 고사하고 전화 신호도 잡히지 않아 지하철이 역에 들어갔을때만 간헐적으로 터지는 수준이다.


그 외에도 정말 하나하나 열거할 필요도 없이 그냥 우리 삶의 모든면에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신기술이 도입되고 보급되는 나라라고 보면 된다. 외국에서 1년만 살다 와도 몰라보게 변해있는것이 한국이다. 새로운 것이 빠르게 생겨나고, 오래된것들은 더욱 빠른 속도로 잊혀져간다. 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은 전화를 건다는 뜻의 손모양이 그 전 세대와 다르다고 한다. 공중전화도 유물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도 이미 모르는 아이들이 있지 않을까?




열쇠


분실위험도 있고, 도용 위험도 있는 열쇠 대신 디지털 도어락이 달린 현관문이 자연스러운 풍경이 된지 오래건만 뉴욕에서는 아직도 디지털 도어락이 흔치않다. 겉보기엔 평범해보여도 100년은 족히 넘은 집이 대다수인지라 그런가보다 하기에는 현관문 하나, 아니 열쇠구멍 하나 바꿔다는것이 그렇게 큰 일도 아닌데 왜 아직도 대부분의 집들이 열쇠를 사용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도 첨단기술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으로써, 게다가 디지털 도어락을 당연시하며 살아온 사람으로써, 열쇠와의 에피소드는 참 잊을 수 없는것이 많다.




문은 잠겨있을때도 오싹하고
안 잠겨있을때도 오싹하다

10년전에 뉴욕으로 넘어와 첫번째에 살았던 집은 정말 좁았지만 건물은 컸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뉴욕에서 살았던 집 중에 가장 좋은 집이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좋은 건물에 살 수 있을까 싶을만큼 고급 주택이었다. 호텔 유니폼같은 옷을 입은 도어맨이 무려 3명이나 1층 로비에 상주하는 건물이었다. 건물 입구도 고풍스러운 목재 회전문을 밀면서 들어가게 되어있었고 오렌지색 조명이 은은하게 퍼져나오는 클래식한 건물이었다. 영화에 나오는것처럼 나무로 마감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긴 복도를 따라 양쪽으로 호텔처럼 집이 있었고, 문도 정말 오래된 호텔처럼 검은색 문짝에 금색 손잡이가 달린 집이었다.


집은 정말정말 좁았다. 뉴욕은 단기로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가구까지 아예 딸려있는 집도 많고 그 집이 바로 그런 집이었다. 집은 좁은데 침대는 왜그렇게 크고, 책상은 무슨 변호사 사무실인가 싶게 크고 중후했다. 침대와 책상을 제외하면 말 그대로 발 디딜곳도 거의 없어서 바닥청소를 할것도 없이 물티슈 한장 들고 슥슥 닦으면 될 정도였다.

사건은 오래 기다릴것도 없이 그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난 다음날 아침에 바로 발생했다. 시차와 더위로 제대로 잠을 못 자고 새벽같이 일어나 전날 준비해둔 빵과 주스로 간단한 요기를 마친 후, 쓰레기를 대충 정리해 복도에 있는 쓰레기 수거함에 내어놓고 다시 들어오려고 하니 문이 잠겨있는것이 아닌가.


다시 그 집에 처음 입성하던 순간을 떠올려보자. 영화에 나오는것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긴 복도를 따라 양쪽으로 호텔처럼 집이 있었던 것이다. 이정도 분위기에서 파악을 했어야 하는건데, 나는 그냥 내가 살 집이라는 생각에 전혀 의식을 못했던 그 현관문은 호텔 현관문처럼 밖에서 닫으면 잠기는 그런 문이었던 것이다.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등에 땀이 흘러내리는 느낌이었다. 이른 새벽시간에 쓰레기만 살짝 버릴 생각으로 옷도 제대로 입은것도 아니었는데 (그래도 입긴 입었다는게 어찌나 다행인지) 그 와중에 1층에 도어맨이 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쳐 부스스한 머리와 못봐줄 몰골로 내려가 짧은 영어로 수줍게 열쇠..라고만 말했는데도 도어맨은 자주 있는 일이라는 듯 웃으며 마스터키를 내어주었다.

그리고 그런 일은 그 후로도 나에게 정말 자주 일어났다. 나는 태어나 성인이 될때까지 문을 잠그지 않는 시골에서 살다가, 성인이 되어 서울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했을땐 이미 디지털 도어락이 보급된 시기라서 열쇠라는것 자체를 써본일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호텔문의 문제는 내가 열쇠를 가지고 나와서 잠궈야만 잠기는것이 아니라, 그냥 닫기만 하면 잠기는 구조이니 열쇠를 집안에 두고 나와 문이 닫히는 순간 "아차" 하는 일이 정말 수도없이 일어났다. 그 후로는 "열쇠.."라는 그 짧은 단어를 말할 필요도 없이 도어맨은 나에게 마스터키를 주었다.


그 집에서 2년 가까이 살았을 때 그 문이 잠기지 않게 하는 방법이 있다는걸 알았다. 유레카였다 정말. 문을 열었을때 잠금쇠 부분에 보면 스위치같이 생긴 장치가 있는데 그걸 내려놓으면 밖에서 잠글때도 열쇠로 잠궈야만 잠기게 할 수 있는거였다. 그걸 알게된 후로는 도어맨에게 마스터키를 받는 일은 없어졌지만, 이번엔 반대로, 문을 닫기만 하면 잠기던 그동안의 습관이 몸에 배어 문을 안 잠그고 외출을 하는 일이 발생했다. 다행히 안전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도난을 당한적은 없지만 외출에서 돌아왔을때 문이 안 잠겨있는걸 발견했을때의 오싹함은, 반대로 내가 열쇠를 두고 나왔는데 문이 잠긴 상황의 오싹함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그 후로 여차저차 하여 열쇠를 사용하는 생활에 익숙해졌는가 싶었더니, 5년후에 생각지도 못한 열쇠 에피소드가 다시 한번 발생한다. 스릴이 넘치다 못해 손에 땀을 쥐고 지금도 심장이 뛰는 그 이야기는 다음번에 적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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