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마라톤까지 한달 정도 남았기 때문에 주거리를 폭발적으로 늘려나가는 시기다. 마지막 2주는 뛰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이번주는 18마일 (29km) 훈련이 있었다. 거리는 매주 늘리지 않고 조금 덜 뛰는 주를 한번씩 끼워가며 2주에 한번, 2마일 정도씩 늘린다.
마라톤의 총 거리가 42km정도인걸 감안하면 29km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하지만 해보면 알겠지만 하프마라톤 지점 이후로는 단 1km만 더 뛰는것도 꽤나 힘이 든다.
그냥 재미로 한 30km정도를 평상시에 (딱히 훈련도 아닌데) 뛰는 사람들도 있지만, 생각보다 이게 시간도 많이 잡아먹는 노동이라 정상적인 사회생활과 가정을 건사하려면 자주 할수는 없다. 내 기준으로 한 2시간정도, 20km전후까지는 주말에 재미로 뛴다고 쳐도 그 이상은 훈련때 아니면 조금 힘든것 같다.
그래서 오랫만에, 아니 정확히 1년만에 18마일을 뛰었다. 늘 강조하지만 장거리 달리기는 한가한게 최고의 매력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잡생각을 밑도끝도 없이 하며 달렸다.
속도에 집착하지 않고 꾸준한 페이스로 편안히 끝까지 뛰는게 목표인 장거리 훈련이지만 당연히 뒤로 갈수록 지친다. 20km를 지나면 “편안히”가 아닌게 되어버린다.
그리고 하나둘씩 내려놓는다.
많이 뛸수록 줄어드는 것
그것은 내 안에 가지고 있던 시기, 질투, 체면, 집착.
달리기를 처음 시작하고 점점 기록과 거리가 늘어나고, 대회에 나가 완주만 하면 주는거지만 메달도 받고 하다보면 꽤나 멋진 내 모습에 스스로 취한다.
숨을 꼴딱거리며 왼발 오른발 하던 시기를 지나 주변을 보고 이야기를 나눌 여유가 생기면 크루들과 경치 좋은 코스를 뛰고, 또 그런 내 모습에 취한다.
그 상태에서 대회를 나간다. 제법 장비도 갖춰지고 경험치도 쌓이다보니 코스에서 찍히는 사진도 꽤나 폼이 난다.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 겸손함이 없어진다.
뛰어보니 별거 아니네
확 풀코스 가보자고!
그렇게 하프지점을 넘어버리는 만행(?)을 저지른다. 그리고 25km, 29km, 35km 훈련을 하나하나 넘어 풀코스로 향한다.
이 훈련을 하나 하나 소화할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벗겨져 나간다.
내 안의 시기, 질투, 체면, 집착…
뭐? 시작한지 몇달도 안된 뉴비 주제에 나랑 똑같이 풀코스 훈련을 해?
철모르고 나대네??
시기.
뭐?? 하프마라톤 첫 대회인데 2시간 이내 완주라고??? 신발빨 시계빨 젤빨 아니야???
질투.
그래도 내가 달리기 n년 해온 나름 고인물이니까 풀코스 O시간 이내는 뛰어야지.
체면.
다른건 다 내려놓아도, 남들보다 잘 뛰지 않아도 좋고, 뉴비 누구누구보다 잘 뛰지 않아도 좋고, 서브4 서브3 안해도 좋은데, 내 작년 기록보다는 잘 뛰어야해!!!
집착.
이 모든것을 차례로 내려놓는것이 풀코스가 아니던가.
아직 누군가에게 샘이 나고,
아직 코스에서 분노를 느끼고,
아직도 포기할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면
덜 뛴 것이다.
마라톤을 왜 하느냐는 물음에
100명이면 100개의 다른 대답이 나오겠지만
결국 모든 마라톤 러너의 마음속 깊은 바닥에는 똑같은 이유가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나의 가장 낮은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가장 겸손한 스스로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달리면 달릴수록 줄어드는것.
교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