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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담 Jul 29. 2021

냉장실은 얼고 냉동실은 녹는 냉장고

맥주 튀김옷을 입힌 대구튀김과 유부초밥

오랫만에 유부초밥을 싸볼까 하고 냉장고를 뒤적거리니 서걱서걱하게 언 유부가 나온다. 또 그런 계절이 왔다. 우리집은 여름이면 수돗물이 꽉 잠궈지지 않아 똑똑 떨어지고, 냉장고는 본분을 잃는다. 얼지 말아야 할것은 얼고, 얼어야할것은 조금 녹는다. 냉장실 안쪽 깊은곳 (이라고 하기엔 너무 얕은 자그마한 냉장고지만) 하여간 안쪽에서 반찬통을 꺼낼때 얼음이 후두둑 떨어지면 아 여름이구나 싶다. 


생각해보면 우리 친정엄마가 시집올때 사왔다던 금성 냉장고가 저랬었다. 크기며 손잡이 모양이며, 냉장고 안쪽에 바베큐그릴같은 선반을 끼우는것도. 요즘 한국에서는 찾아볼수도 없는 구형 냉장고를 쓰고있다. 브루클린에서 말이다.


해외생활이 녹록치가 않은가보다 싶어 눈물겨울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 대부분의 뉴욕 집들은 냉장고가 구식이고 아주 작다. 나는 이것도 나름의 브루클린 아날로그 감성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신축건물은 냉장고도 신형이지만 우리나라만큼 화려하진 않다. 냉장고는 그야말로 '차게 보관해야 할 것을 보관하는 곳'이라는 뜻의 冷蔵庫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 애초에 냉장고에 뭘 가득 쟁여놓고 먹을만큼 집에서 음식을 열심히 해먹는 사람도 잘 없고, 오늘 먹다 남은 음식을 내일 데워먹을때까지 잠시 보관하는 정도랄까. 

(같은 미국에서도 뉴욕같은 대도시가 아닌 지역은 이야기가 다르다. 가정집에 냉장고가 4대씩 있는것도 흔한일. 한번 장보러 가려면 차끌고 몇시간씩 가야하는 곳도 많기 때문)


또 하나 뉴욕 집들의 냉장고가 구식인 이유는 집이 오래되어서다. 미국을 역사 짧은 나라라고 무시하지 마시라. 알고보면 의외로 뉴욕은 건물을 오래 써서, 길가에 있는 건물의 평균연령으로 치면 서울보다 더 유서가 깊을 지경이다.

내가 살고있는 집도 지은지 올해로 102년이다. 102년 되었어도 초가집도 아니고 외벽도 중간에 수리를 했는지 겉보기엔 좀 낡긴 했어도 100년은 뻥 아니야? 싶다. 그런데 막상 살다보면 100년 되었다는게 빈말이 아닌걸 느끼는 순간이 종종 있다. 예를들면 세탁기를 설치할 수도꼭지가 없다는 점? 그리고 계단폭이 엄청나게 좁다는 점. 그래서 1층 거주자는 큰 냉장고를 사기도 하지만 2층부터는 무조건 소형냉장고다. 요즘은 소형이 신제품으로는 거의 안 나오니 자연히 구형 냉장고를 계속 쓰는 것이다. 얼지 말아야 할 것이 얼고, 얼어야 할 것이 녹아도 이제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산다. 그리고 뭐, 여름이 지나고 나면 다시 정신을 차린다는 것도 이제는 알고있으니, 오늘은 야채가 다 얼어서 저녁 찬거리가 하나도 없네 피자 배달 시켜서 맥주나 한잔 할까? 아니면 햄버거 사서 공원 가서 먹을까? 하는 여유를 부려보곤 한다. 




2021년 7월 22일

유부초밥

맥주튀김옷을입힌 대구튀김

단무지

게란말이

오이 쯔유절임



100년된 집에 사는것도 다 풍류를 아는 사람만 되는거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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