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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담 Jul 23. 2021

완벽한 반숙계란을 삶을 수 있을것 같아. 내일은.

춘권을 곁들인 주먹밥 도시락


우리집은 점심과 저녁은 적당히 먹더라도 아침에는 좋은것을 먹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토마토를 먹으면 건강에 좋다던가, 올리브오일을 한스푼씩 먹으면 좋다던가, 삶은계란이 좋다던가 또는 비트가 좋다던가... 그런 모든것을 잊어버리기 전에 그냥 아침에 다 먹자는 심플한 생각이다. 


그래서 아침에 제일 먼저 ABC주스를 마신다. 비트와 당근은 삶은것을 쓰라고 하는데, 당근은 날것이 더 맛있어서 비트만 미리 삶아둔것을 냉동 해 두고 쓴다. 얼은 비트가 갈아지면서 샤베트처럼 시원하고 사각사각한 ABC주스가 완성된다. 내장을 짜르르하게 타고 내려가는 느낌을 느끼며 그때부터 도시락과 아침식사 준비를 한다. 


가스불을 붙여 밥을 지으면서 토마토도 씻고 빵도 썰고, 그리고 계란도 삶는다.



이 계란이 문제다

저는 요리를 못해서 라면이랑 삶은계란밖에 못해요... 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묻고싶다. 대체 얼마나 계란을 잘 삶길래 그렇게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는거냐고.

상온에 두었던 계란으로 삶아야 한다, 아니다 물을 먼저 끓인다음 냉장고에서 꺼낸 차가운 계란을 바로 넣어야 한다, 삶음물에 식초를 한스푼 섞어야 한다. 다 삶은 다음 얼음물에 넣어야한다. 반숙은 8분이다 등등.... 세간에 떠도는 삶은계란 비법은 많지만 은근히 성공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이번에 성공했다고 해서 같은 방법으로 다음에 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계란이 매번 똑같은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름 가스불로 솥밥 짓는 장인이기 때문에 계란도 냄비에 물을 찰랑찰랑 담아 끓인다. 타이머가 울리면 다른 요리를 하다가도 바쁜 손을 멈춰 제일 먼저 계란을 찬물에 담궈 껍질을 깐다. 일단 망한 느낌이 드는 날은 껍질부터가 제대로 안 까진다. 말쑥하게 쏙 빠져나오는 날은 느낌이 좋다. 반으로 탁 갈라보아 노른자가 80% 익었으면 성공이다. 

그런데 성공인 날이 절반도 안된다. 무슨 오늘의 운세 뽑기도 아닌데 아침마다 두근거리며 계란을 깐다. 은근히 스트레스다.


내일은 기분좋게 쏙 뽑아보자 하는 마음에 또 다시한번 "계란삶는법"을 검색한다. 새로운 방법이 있는지 물색하다보면 꼭 하나쯤 계란 삶는 기계가 눈에 띈다. 언제 어떻게 삶아도 늘 똑같은 계란으로, 완벽한 계란요리를 만들어준다는 에그스티머. 그래? 그럼 저거나 하나 살까?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괜한 오기가 생긴다. 

저런거 있어봐야 자리 차지 할테고, 냄비가 없는것도 아닌데 가스렌지로 삶지 뭐. 내일은 내가 정말 물량이랑 시간 잘 지켜서 완벽한 80%짜리 반숙계란을 삶아야지! 


그렇게 한 5년을 삶았나보다. 




신세계다. 정말 매번 똑같이 삶아진다. 신기하게 계란을 3개 넣고 삶아도, 6개 넣고 삶아도 똑같이 삶아진다. 

'왠지 모르게 내일은 잘 될 것 같은 느낌'에 고통받은 지난 5년이 억울할 정도다.


'내일은 잘 될 것 같은 느낌'을 '내일도 잘 된다는 확신'으로 바꾸기 위한 소비 치고는 굉장히 싸게 먹힌것 같다. 




삶은계란

꼬들단무지

적양배추 라페

주먹밥

춘권



밥이 적어보이지만 밑에 한겹 밥을 깔고 시작하는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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