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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담 Jul 18. 2021

김밥은 앞구르기 하며 싸도 김밥 맛이 난다

라임즙과 동남아 피쉬소스로 간을 한 함박스테이크 김밥

나는 살면서 김 싫어하는 사람을 본 기억이 없다. 한국사람만 그런게 아니라 국적이나 인종을 불문하고 김은 다들 좋아한다. 처음엔 생긴것이 좀 종이같고 까만데다가, 심지어 이름이 바다잡초(ㅜㅜ seaweed)다보니 거부감을 갖는 사람은 있지만, 어찌어찌 해서 한번 맛을 보면 백발백중 좋아한다. 


국적과 인종, 연령을 불문하고 취향을 저격해버리는것도 신기한데 더욱 신기한건 음식맛이라는걸 알기는 알까 싶은 '아기'들에게도 김은 실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기를 키워본 엄마들이라면 '김' 그 중에서도 기름발라 구운 김이라는 치트키를 안 써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말 어지간히 밥을 안 먹는 아이도 "김에 싼 밥 줄까?" 하면 제비같이 입을 쫙쫙 벌려가며 받아먹는다.


김 자체로 이렇게 위력이 대단한데, 그 속에 갓 지은 고슬고슬한 밥을 참기름에 비벼 깔고 각종 맛있는것들을 이것저것 골고루 담아 돌돌 만 김밥이라는것은 더이상 말이 필요없다. 김밥은 종교적 이유로 금기된 식재료가 들어가지만 않는다면 전세계사람 누구에게 먹여도 백발백중 좋아하는 음식이다. 외국에 살면서 손님초대를 하거나,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가지고 가야하는 포트럭 파티를 할때 김밥만큼 확실한 흥행 보증수표가 없다. 


외국생활도 10년째, 남편 도시락도 10년째 싸다보니 이제 김밥은 아침에 일어나 '오늘 김밥이나 쌀까?' 하면 바로 되는 경지에 달했다. 오히려 김밥을 싸는건 아무 일이 아닌데, 재료를 갖추게 큰 일이다. 김은 아마*에서 한국산 김밥용 김을 사면 되고, 쌀은 집에 늘 있지만, 단무지나 우엉은 쉽게 아무데서나 살 수 있는게 아니니 미리 사서 쟁여야한다. 특히 우엉은 계절에 따라 마켓에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아서 겨울철에 많이 사서 미리 볶아서 냉동해두기도 한다. 시금치도 미국슈퍼에서 파는것은 여린 새싹이라 한자루를 사와도 데치면 한줌이 되어버리니 되도록이면 한국슈퍼에서 산다. 거기에 게맛살이나 참치가 있으면 금상첨화. 한국에서 파는것 같은 김밥용햄이라는것도 쉽게 아무데서나 살 수 있는것이 아니니, 베이컨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고, 보통은 참치캔으로.... 저렴하고 간단하게 한끼 떼우는 메뉴에 불과했던 김밥이 외국에서 살다보니 이렇게나 복잡하고 귀한 메뉴가 된다. 


요리나 살림이 서툴던 새댁시절에는 그중에 한가지라도 빠지면 큰일나는줄 알고 꼼꼼히 확인해가며 장을 보고, 긴장으로 밤잠까지 설쳐가며 도시락을 싸곤 했지만, 외국살이가 오래되고 주부로서의 짬바도 올라가니 한두가지는 모르는척 빼놓고 싸기도 하고, 햄이 없으면 고기를 구워서 넣기도 하고, 시금치 나물은 귀찮으니 아무거나 초록색인것을 넣으면 된다고 상추도 슬쩍 넣어본다. 그렇게 근본없는(?) 김밥을 싸도 신기하게도 늘 김밥은 김밥 맛이 난다는걸 발견했다. 그때부터는 막 나가는거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 도시락 김밥?' 하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김만 확인하면 된다. 나는 매번 도시락은 그날 아침에 새로 지은 밥으로 싸기 때문에, 김이 있는걸 확인하고 밥솥에 불을 붙인 다음 그때부터 재료를 꾸려본다.


냉장고를 열어본다. 전날 먹다 남은 함박스테이크가 있다. 운 좋게 게맛살 6개가 냉동실에 남아있다. 도시락 반찬용으로 거의 늘 있는 적양배추 절임도 있다. 고기말이로 만들어 도시락에 넣으려고 샀다가 귀찮아서 고기말이를 안 하고 있던 오크라도 있으니 재료가 차고 넘친다. 이정도면 꽤 푸짐한 김밥이 될 것 같다. 재료가 충분하니 오늘은 계란지단을 패스하고, 적양배추 절임이 식초가 많이 들어간 새콤한 맛이니 밥은 참기름이 아니라 라임즙에 동남아 피쉬소르를 섞어 비벼본다.



오크라의 독특한 모양과 적양배추 절임의 화려한 색깔이 거들어주니 세상 예쁘다. 라임즙과 피쉬소스로 간을 한 밥이라니 무슨맛일까? 김밥을 싸면서 나도 궁금해지는 맛. 


김발도 없이 밥을 둘둘 말아 김 끝이 아래로 가도록 놓고 잠시 모양이 잡히도록 둔 다음 칼에 물을 묻혀 쓱 썰어본다. 무슨맛일까 두근두근하며 꽁다리를 한입 가득 욱여넣으면.....



신기하게도 김밥맛이다.

그냥 김밥은 뭘 해도 김밥 맛이다. 

앞구르기 하며 싸도 김밥 맛.

뒷구르기 하며 먹어도 김밥 맛.




+덧+

그리고 나는 이걸 보고 "오~! 스시~!" 라고 말하는 외국인들을 절대로 그냥 두지 않는다.

특히 내가 참기름과 소금으로 정석대로 밥을 비빈 날은 도끼눈을 하고 정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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