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국적으로 순환근무를 하는 곳에서 일한다. 기관 특성상 같이 일하는 동료가 자주 바뀐다. 화가 많은 상사도 만나봤고 영감님 행세(?)를 하는 젊은 상사와도 일해봤다. 어떤 스타일이든 공통적으로 일을 잘 안 하려고 한다. 후배 직원을 윽박지르든 구워삶든 해서 일을 떠넘긴다. 그 중에서도 전국적으로 유명한 분이 있는데 그 분의 이야기다.
나이는 50대 중반으로 많은 편에 속한다. 팀장으로 왔고 인간적으로는 좋은 분이었다. 다만 업무적으로는 나와 잘 맞지 않았다. 아마 과거에는 일을 열심히 하셨던 거 같은데 지금은 회사에 안 좋은 감정이 있으신 모양이다. 책임에 있어서 회피 성향이 매우 강한 편이다.
팀장님은 처음 왔을 때 ”각자 맡은 업무를 잘 합시다“라고 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그런데 책임질 만한 업무에서는 본인 이름을 다 뺐다. 본인 업무분장에는 신입사원한테도 안 시킬 사업을 넣었다. 그리고 그 사업을 메인으로 맡아 열심히 했다. 그 사업은 정말 쓸모없는 거라 지금은 내가 없애버렸다.
팀장이지만 말단 사원이 할 일을 맡아 ‘그것만’ 잘 하겠다는 소리였다. 그 사업은 출장이 많았다. 팀장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출장을 나갔다. 연말에 정산을 해보니 팀장님은 1년동안 출장을 160일 가까이 나갔다. 거의 1년 내내 사무실에 없었던 것이다. 업무량으로 따져봤을 때 40일이면 충분할 것을 매일 나가기 위해 쪼갰다. 사실 팀장님이 출장비도 받고 바람 쐬러 다니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전체 경비는 정해져 있기 때문에 다른 직원들이 피해를 봐야 했다. 이것 때문에 대판 싸우기도 했다.
제일 큰 문제는 현안이 터졌을 때에도 회피만 한다는 것이었다. 뉴스에 나올만큼 큰 사고가 터진 적이 있었다. 팀장님이 바람 쐬러 나간터라 나는 부장님을 모시고 현장에 다녀왔다. 설상가상 현장에는 비바람까지 불었다. 비를 쫄딱맞으며 현장도 둘러보고 사고 원인자를 만나 실랑이를 벌였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팀장님이 나에게 물었다. “뭔 일 있었어?” 부장님이 탕비실로 지나가고 있었다. 뭔가가 날아올까봐 간담이 서늘했다. 그런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때는 부장님도 팀장님을 포기한 시점이라 그랬던 것 같다. 보통 관리자였다면 소리지르며 난리가 났을 것 같다.
이외에도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예를 들어 내가 “A사업에서 B라는 문제가 있는데 C라는 방법으로 해결하는 건 어떻나요?”라고 물어보면 팀장님은 “난 젊었을 때 A 같은 사업 해봤는데 진짜 국회의원 때문에 너무 힘들었어...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와 같은 식으로 답변했다. 대화는 거기서 끊어졌다. 팀이 어떻게 되든 말든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런 화법이 도움이 될 때도 있었다. 문제가 되는 사업이 있어 감사를 받았었다. 팀장님은 혼자 가기 무서웠는지 같이 가자고 했다. 어차피 나도 소환될 거 같아서 같이 갔다. 감사인의 질의에 팀장님은 계속 엉뚱한 얘기만 했다. 옆에 있던 다른 감사인이 참다 못해 “지금 감사 거부하시는 거에요?”라며 소리쳤다. 그래도 팀장님은 동문서답을 했다. 감사인은 관련 법 조항을 조목조목 설명하며 추궁했지만 팀장님은 끝까지 이상한 소리를 했다.
나중에 감사 자료를 제출하러 갔는데 그 화냈던 감사인이 나를 따로 불러냈다. “솔직히 팀장님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라며 하소연했다. 계속 분이 안 풀렸던 모양이다. 나는 “그런가요, 하하”라고 대답한 뒤 복귀했다. 사실 징계도 받을 일이었지만 큰 문제 없이 지나갔다. 어쩌면 동문서답이 도움이 됐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