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욕먹어도 GO

by 태태파파

“육아휴직이라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아이를 돌볼 겁니다. 회사에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육아휴직 전 송별회 자리에서 했던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나는 어리둥절하며 멋쩍게 웃고 있었다. 부장님은 “응? 기회? 야 이거 안 되겠네. 이직하겠다는 말인가?”라고 했다. 맞은편에 있던 나이 많은 차장님은 “저번에 ㅇㅇ지사 그 친구 육아휴직하더니 이직했잖아요”라며 맞장구를 쳤다.


우리 부서에는 50대 이상 남자 직원이 많다. 청자의 눈높이에서 건배사를 했어야 했다. 이 분들은 내가 쉬러 간다고 생각한다. 나는 뒤늦게 육아는 이래서 힘들고 저래서 힘들다고 얘기했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냥 방에 두고 밥만 주면 잘 크는데 뭘“이라는 답변이 돌아올 뿐이었다.


내가 다니는 공공기관은 타 기관에 비해서도 보수적인 편이다. 지인들과 회사 얘기를 해 보면 대체로 “이야 아직 갈 길이 머네”라는 반응이다. 휴가를 쓰려고 해도 관리자에게 구체적인 사유를 설명해야 한다. 일이 많은 직원은 해외여행도 못 가게 했다. 그 직원은 열심히 이직 준비를 하고 있다.


한번은 체력단련을 갔을 때의 일이다. 등산을 하거나 트래킹을 하는 거였다. 부장님 포함 승진 대상자들은 등산을 선택했고 나머지 직원들은 트래킹을 선택했다. 부장님은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등산을 갔어야 했다고 했다. 회식 자리에서 1시간 동안 세워놓고. 이런 분위기의 회사라 남자가 육아휴직을 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 부장님께 얘기를 꺼냈을 때 “응? 내년에 본사간다고?”라며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나는 ”아뇨. 육아휴직을 하려고 합니다“라고 했다. 부장님은 생전 처음 듣는 얘기인지 “어어 그래”라고 당황해하며 대답했다.


물론 법적으로 육아휴직을 거부할 수는 없다. 그런데 사회생활에는 불문율이 있지 않은가. 그 이후로 부장님의 공격은 계속됐다. 사실 말로 뭐라고 하는 건 괜찮다. 하도 단련이 돼서 그런지 기분 나쁜 말을 듣는다고 정신적으로 타격을 받진 않는다. 그런데 나에게 숙제를 주기 시작했다.


맡은 업무만 하기도 벅찬데 이것저것 시켰다. 보고용 문서를 계속해서 만들게 시켰다. 내가 있는 부서는 페이퍼워크를 하는 곳이 아니라 실제로 일을 진행하는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퇴근 후나 주말에 보고서를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퇴근 후와 주말에는 육아를 해야 했다. 아이가 깨어 있을 땐 육아를 했고 아이가 잠들면 숙제를 했다. 육아휴직 들어가면 남은 직원들한테 업무가 전가된다고 죄인 취급을 받던 터라 숙제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아내는 그런 나를 못마땅해했다. 입에 힘들다는 말을 달고 다녀서 그랬던 것 같다. 나는 나 나름대로 육아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거였는데 아내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자주 싸웠다.


이대로 가다가는 가정이 파탄날 것 같았다. 그래서 마음을 좀 내려놓기로 했다. 회사에 대한 마음을. ‘어차피 욕먹을 거 너무 열심히 하지 말자’라는 생각을 갖고 일을 했다. 가정을 더 중요시 여기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잘한 것 같다. 육아휴직을 해 보니 회사보다는 가정이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먼발치에서 회사를 보니 회사에 충성했던 과거의 내가 안쓰럽기까지 하다.


육아휴직을 하면 내 업무를 다른 직원들이 맡아서 할 수밖에 없다. 아직은 회사 구조가 그렇다. 그래서 남은 동료들에게 인센티브를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근데 그건 사회가 감당할 몫이다. 죄짓는 것도 아니고 육아휴직 쓰는 걸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육아휴직을 쓰는 남자들이 많아져야 사회는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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