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경력이 되어가는 과정

커리어의 무덤, 공공기관

by 태태파파


입사 초에 이런 생각을 했었다.


‘여긴 왜 무능한 사람 밖에 없을까?’


일을 안 하려는 사람, 일은 많이 하는데 핀트를 못 잡는 사람 등. 지금은 이들이 이해가 된다. 그래도 아직은 이들처럼 되고 싶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들은 나의 미래 모습이다.


아래는 내가 생각하는 물경력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 아웃소싱 위주의 업무

토목공사를 하게 되면 보통 기본설계, 세부설계, 시공 순서로 일이 진행된다. 이 업무 중 직접 하는 건 거의 없다. 외부 업체에 용역을 주고 사업을 진행한다. 업체를 규정대로 관리하는 게 중요 업무가 된다.


업체가 일을 잘했는지 못했는지 검토를 해야 한다. 검토는 그 일을 잘 알아야 할 수 있다. 그런데 직접 해본 게 아니라서 대부분 잘 모른다. 그래서 외부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게 된다. 당위성만 생기면 상위기관에서 승인을 낸다. 그러면 프로젝트는 종료되고 나에게는 업무 절차에 관한 지식이 남는다.


- 일을 잘하면 일이 늘어난다

처음 일을 맡았을 땐 의욕이 넘친다. 사소한 것도 열심히 한다. 안 되는 것도 되게 하려고 기를 쓴다.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도 받지만 일이 잘 되면 뿌듯함도 느끼고 아는 것도 많아진다.


일은 점점 잘하게 되는데 일이 많아진다. 윗사람들은 일 잘하는 직원에게 일을 맡기고 싶어 한다. 그러다 보니 일을 잘할수록 일이 점점 많아진다. ‘왜 나만 알하지?’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심하면 우울증이 올 수도 있다. 결국 일을 잘하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상명하복과 고용 안정성

내가 본 상사는 두 종류이다. 후배에게 일을 많이 시키거나 덜 시키거나. 연차가 쌓일수록 일을 안 하게

된다. 승진을 해야 한다면 후배에게 일을 많이 시키면 되고, 승진을 포기했다면 후배에게 대충 넘기면 된다. 일을 맡게 된 후배는 어쨌든 일을 할 테니까. 이런 사람들은 발전이 끝났다고 볼 수 있다.


- 일 보다 중요한 것: 취미생활, 가족

회사생활에 익숙해지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대부분 취미생활을 하거나 결혼하고 애를 낳는다. 일을 더 열심히 하고 실력을 기르겠다는 생각 보단 취미생활이나 육아에 열중하게 된다. 회사는 단순히 내가 노동을 대가로 돈을 받는 곳이 된다.


- 중요한 건 기술력이 아닌 행정력

정책 방향이 정해지면 그거에 맞게 일이 진행되기만 하면 된다. 회사는 나에게 옳고 그름을 묻지 않는다. 내가 맡은 업무에 기술적인 결함이 있다고 해도 그걸 고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설령 내가 정답을 알고 있다고 해도 그렇다. 정해진 대로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공무원들을 답답해하는 것이다.




나도 조만간 선택을 해야 한다. 무능해 보이는 선배들은 사실 내 미래다. 이들도 면접시험 볼 때는 각 잡고 앉아 입사 후 포부에 대해 당찬 목소리로 얘기했을 것이다. 정말 가끔 자신만의 전문성을 키워서 이직하는 직원들이 있다. 나도 이들처럼 실력을 키워 기회를 잡을지 아니면 현실에 안주할지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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