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와 설탕 끊기 -20일 차-
나이가 30이 넘었지만 아직도 부모님 품은 따뜻하다.
명절을 맞아 첫째를 데리고 본가로 올라갔다. 둘째는 아직 5개월이라 와이프와 집에 있었다. 부모님은 이제 일흔이 다 되셨지만 아들이 힘들게 손주와 올라온다고 서울역까지 마중 나오셨다. 내가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아버지는 내 짐을, 어머니는 손주를 안아주셨다.
집에 도착하니 할머니와 누나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얼굴도 밝아지고 살도 좀 빠진 것 같다고 했다. 역시 밀가루와 설탕을 끊은 보람이 있다. 자켓도 두고 올라갔는데 다행히 아버지의 자켓이 몸에 맞았다. 살이 빠지긴 했나 보다.
아버지와 누나는 첫째와 놀아주고 어머니는 명절 음식을 준비하셨다. 나는 오랜만에 내가 지내던 방으로 가서 드러누웠다. 아이 걱정 없이 머리를 비운 채 뒹굴뒹굴 누워있었다. 누군가 나 대신 아이를 봐준 건 코로나와 요로결석 걸렸을 때 밖에 없었다. 낯선 자유였다.
다음날 저녁엔 고모네 식구와 작은아버지네 식구도 모였다. 고모는 날 보자마자 한 소리 했다.
“손이 이게 뭐야. 집안일하느라 고생했나 보네. 나도 애 둘 키웠는데 손이 이렇게 되진 않아”
역시 본가에는 날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 타지에선 소아과 의사 선생님뿐이었는데...
하지만 이 손을 보고도 별일 아닌 것처럼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은 부모님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괜히 얘기를 꺼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신 걸까. 아니면 얘기했다가 화만날까봐 그러셨던 걸까. 분명 걱정하셨을텐데. 속상하지만 나를 배려하신 게 아닐까.
부모님은 내가 돌아가는 날도 묵묵히 짐을 들고 서울역으로 배웅 나오셨다. 첫째는 무거워서 안 되겠다고 나보고 안으라고 하셨다. 열차에 짐까지 실어주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열차에서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육아하느라 힘들어서 부모님의 품이 더 따뜻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사랑한다는 말은 하기 좀 그러니까 연락이나 자주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