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집 짓기의 두 번째 단계 설계
8. 어느 시공사에 내 집을 맡겨야 할까?
철골조로 집을 짓기로 결정하고 철골조 건축을 하는 업체를 찾기 시작했다. 업체 정하는데 3개월 이상 걸린 걸로 기억한다. 이때 어려웠던 점은 콘크리트 주택을 주로 짓는 업체는 철골조 주택이나 목조주택의 단점만을 부각하고 이런 단점들 때문에 철근 콘크리트로 집을 지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목조조택을 주로 짓는 업체는 역시 콘크리트 주택의 큰 단점인 새집증후군에 대한 이야기를 강조하고 자극적인 단어 포름 알데히드를 예로 들면서 사람이 살아야 하는 집인데 건강이 제일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선택은 오직 내 몫이다.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끝없는 선택의 순간들이 이제부터 시작된다. 집 짓기는 딱 그 타이밍에 딱 맞는 선택을 얼마나 잘 해내느냐의 문제다. 선택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는 집 짓는 일은 참 쉽지 않다.
건축박람회에 가면 건축 관련 다양한 업체들의 여러 분야 전문가들을 만날 수 있다. 단순히 상담만 하는 분부터 실제 집을 설계하는 건축사, 인테리어 디자이너, 시공사대표님들과 상담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 시공사를 정하기 위해 건축박람회가 열릴 때마다 코엑스 쎄텍 킨텍스를 다녔다. 땅을 보러 다니던 10년 동안도 건축박람회는 수 없이 다녔지만 땅을 구매하고 나서 진짜 집을 짓는다고 생각하니까 현실감이 남달랐다. 그저 정보나 얻기 위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때와는 마음가짐부터가 달랐다. 상담하러 갈 때 내가 연필로 직접 그린 설계도를 가져갔다. 집을 짓기 원하는 평수, 내가 구입한 땅의 크기, 동원할 수 있는 자금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더니 제대로 구체화된 견적을 받아 볼 수 있었다. 내가 집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면 업체 담당자와 성의 있는 상담을 하기 어렵다. 내가 집을 지을 의지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집을 짓기 시작해서 나와 매일 만나게 될 현장소장님이 가장 중요한데 박람회에서는 현장소장님을 만나기는 어렵다. 현장소장님은 주로 건축현장에 계시고 박람회에는 건축주 유치 능력이 있는 시공사 대표님이나 인상 좋은 영업소장님들이 계신다. 박람회가 4일간 열린다면 4일 동안 최대한 여러 번 찾아가서 얼굴을 서로 익히고 많은 대화를 나눠보는 것이 좋다. 나는 택지 조성이 되어 있는 주택단지의 필지를 구입했기 때문에 먼저 짓고 있는 집들을 볼 수 있었다. 짓고 있는 집 벽면에는 건축허가표지판이 있다. 건축주, 시공사, 설계자, 감리자, 현장소장, 시청 도로과 건축과 환경과 등 주택 건설에 관련된 모든 사람의 전화번호와 이름을 알 수 있다. 박람회에서는 전국구 단위라서 내 집을 지을 위치에 건축이 가능한 업체를 찾기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집 짓는 현장에 붙어 있는 현수막의 업체는 이 위치에 공사를 실제로 하는 곳이기 때문에 시공사 찾는 일이 좀 쉬워진다. 그리고 대부분의 공사현장에는 현장소장님이 상주해 계시기 때문에 이것저것 질문하기가 수월하다. 건축허가표지판의 전화번호로 건축주와 통화를 해 보는 것도 좋고 업체 대표님을 만나 대화를 해 보는 것도 추천한다. 되도록 많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 나눠 보면 업체를 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현수막 사진들을 하나씩 사진 찍어 두었다가 전화를 할 때 급식 배달을 하는 업체에도 전화를 해 볼 필요가 있다. 어느 업체에서 주문을 많이 하는지 음식값 결재는 제때 이루어지는지...
집을 얻을 때는 부동산 사기, 집을 지을 때는 건축 사기. 집 짓다 십 년 늙었다는 이야기를 흔히들 한다. 가지고 있는 전재산을 쏟아붓고 대출까지 받아서 집을 지어야 하는 건축주로서는 집을 짓는 일은 두려움이 앞서기 마련이다. 중도금을 이체 날짜보다 미리 달라고 하고서는 건축현장에서 사라져 버렸다는 시공사의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에 잠도 쉽게 못 이루는 것이 건축주의 심정일 것이다. 내가 집이 지어지는 과정을 직접 경험해 보니 집 짓다가 십 년 늙는 이유가 될만한 건 소통의 부재. 그리고 건축주의 사전 준비 부족이 아닐까 한다.
콘크리트 전문 업체와 철골조 업체 목구조 업체를 찾아 상담을 여러 차례 나눈 뒤 견적을 받아 보니 나의 자금력과 가장 적합한 형태가 철골조 주택이었다. 철골조 주택을 짓는 업체 대표님에게 견적을 받은 후 한 달 정도 지나 계약을 했다. 그 한 달간 여러 업체를 찾아 비교 견적을 받아 보았다. 비교적 이름이 알려진 업체는 공사 견적으로 1억 이상을 더 불렀다. 이름이 알려진 유명 업체일수록 건축비는 비싸지고 리스크는 적어진다. 내 자금력으로는 도저히 집을 지을 수 없는 금액이었기 때문에 리스크를 감수하고 지금의 업체 대표님과 계약을 했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면서도 집 짓다가 업체가 사라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위의 사진에 있는 것처럼 이 업체는 우리 단지에 10채 이상의 집을 지어야 했기 때문에 집을 짓다가 공사장에서 업체가 사라질 걱정은 안 해도 되었다. 또 한 가지 안심이 되었던 것은 이 업체는 공사 비용을 후불로 받는 곳이었다. 집이 지어지는 만큼만 중도금을 치르고 집이 완성되고 나면 잔금을 치르면 되는 것이어서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시공사를 정했으니 이제는 믿고 함께 가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시공사가 정해졌으니 이제 한 배를 탄 것인데, 세부 설계를 시작하면서부터 벌써 의견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내가 건축에 대해 무지하다 보니 의견이 다른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의 로망과 실제로 가능한 건축과는 괴리가 존재했다. 다른 것은 당연한 것이니 중요한 것은 서로 의견을 맞춰가는 과정이었다. 내가 선택한 땅은 뒷산과의 단차가 있어서 산의 토사가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구조물을 쌓는 보강공사가 필요했다. 1층에 반드시 보강토 옹벽이나 석축을 쌓아야 했는데 그 첫 단계부터 소장님과 의견이 안 맞아 감정이 상하기 시작했다. 보강토는 가성비가 있는 방식이었지만 집의 정면에 1m가 넘는 시멘트 옹벽을 쌓고 싶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