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집 짓기의 두 번째 단계 설계
10. 현장 소장님과의 갈등을 줄이기 위해 내가 썼던 방법
집을 철골조로 짓기로 하고 시공사를 선택했다. 시공사 대표님이면서 현장소장인 분과 도급 계약서를 작성하고 설계를 시작했다. 사실 시공사를 결정하는데도 한 3개월 동안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던 나는 마치 연애를 시작하는 사람처럼 소장님과 가벼운 대화들을 나누며 간을 보고 있었다. 과연 이 사람과 집을 완성하기까지 잘 지낼 수 있을까? 믿을 만한 사람일까? 어떤 일을 도모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다 보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잠 못 이루는 날들이 많았다.
산 쪽으로 옹벽을 쌓는 공사를 제일 먼저 해야 했다. 여러 날 미팅을 하면서 자연석 (면 쌓기)메 쌓기를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지금 생각해 봐도 자연석 조경 쌓기를 하지 않은 것은 신의 한 수였다. 문제는 소장님과 의견을 조율해 가는 과정이었는데... 나는 나대로 내가 원하는 바가 있었고 소장님은 빠른 시간에 공사를 할 수 있고 적은 비용으로 보기 좋은 디자인을 생각하셨던 것 같다. 서로의 의견이 안 맞으니 설계 미팅 자리는 날 선 살얼음판이 되어 언제 깨질지 모르는 조마조마한 분위기였다. 지어진 집을 샀어야 했는데 내가 괜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장님은 건축용어조차 잘 모르는 나를 답답해하며 깊은 한숨을 쉬었고 나는 자신감이 점점 떨어지고 주눅이 들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식자재 마트에 들러 고기 새우 소시지 등 식재료를 충분히 샀다. 한국인은 밥심. 함께 밥을 먹으면서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맏며느리였고 4남매 중 맏딸로 50년을 살아온 사람이다. 사진을 찍는 일을 하고 있던 시절이었지만 사진만큼 자신 있었던 일은 밥 짓는 일이었다. 아침에 6시에 일어나 그날 먹을 점심 준비를 해서 남편과 집을 나섰다. 남편을 회사에 내려 주고 공사장에 가면 오전 8시. 우리 집은 공사 시작 전이었지만 소장님은 먼저 짓기 시작한 다른 집들을 돌아보느라 정신없는 시간이다. 나는 다른 집들이 한층 한층 올라가는 것을 보고 사진 찍고 메모하면서 에어컨 없는 찜통 더위 공사장 컨테이너 안에서 건축 관련 책을 보고 공부를 했다. 책을 보면서 이해 안 되거나 궁금했던 점들은 밥을 먹으면서 하나씩 물어보기도 하고 개인적인 이야기, 일상의 이야기들도 조금씩 나누기 시작했다. 한솥밥을 먹는 날이 이어지면서 소장님도 나도 서로를 보는 표정이 편해졌다.
주말이면 남편과 함께 갬성 쩌는 드럼통 그릴에 전어, 가리비, 새우, 삼겹살... 등 그 계절에 나오는 맛있는 모든 것들을 올려 구웠다. 시원한 맥주도 한잔씩 하고 여유 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점심은 일하는 중간이라서 아무래도 소화 잘되고 든든한 메뉴들로 준비를 했지만 주말 저녁은 와인도 준비하고 테이블보와 매트를 깔고 촛불도 켜서 분위기도 내 보았다. 한낮의 더위가 좀 가시고 인부들이 모두 퇴근한 공사장은 시원하고 풀벌레 소리만 가득했다. 식사 후에는 그릇들을 정리하고 설계 도면을 가지고 미팅을 이어 갔다. 살얼음판 같던 미팅 시간이 따뜻하고 화기애애해졌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시간들이었다.
커다란 곰국 냄비, 1구 전기레인지, 휴대용 가스버너, 압력밥솥, 전기팬, 나눔 접시와 수저... 차에 살림살이를 싣고 다니며 매일 오전 11시 30분에 점심을 차렸다. 그 계절에 나오는 신선한 과일로 샐러드도 만들고, 계란말이를 하자면 계란 한 판. 김밥을 하자면 20줄. 불고기는 최소 5근. 겨울이니까 홍게찜, 굴무침도 빠질 수 없지. 비 오는 날이면 배추전, 가지전, 김치전... 모둠 전이 한 상 차려졌다. 통 큰 집밥을 하느라 그 시기의 우리 집 엥겔계수는 거의 50%에 가까웠다.
사실 설계 도면 완성될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하려고 했던 집밥이었다. 그런데 함께 모여서 밥을 먹으니까 일단 나도 너무 맛이 있었고. 소장님도 디자인 담당 실장님도 늘 고마워하며 어떤 메뉴가 되었든 맛있게 드셔 주었다. 나는 완전히 코가 끼어 버린 것이다. 집 밥은 이제 멈출 수 없었다. 나의 오마카세는 공사가 끝날 때까지... 우리 집이 다 지어지고 이사를 들어간 후에도, 노랫말처럼 '그 후로 오랫동안' 이어졌다.
우리 집의 설계 도면은 수정만 스무 번 넘게 했다. 집밥을 함께 먹으면서 라이프 스타일, 지금까지 살아 온 집들의 구조, 가족이야기, 남편과 만나 연애하고 결혼한 스토리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러면서 집의 윤곽이 조금씩 자리 잡혀 갔다. 빈 땅에 거실 주방 방 욕실 드레스룸을 길이를 재서 끈으로 놓아 보았다. 설계 도면 상의 공간이 감이 잡히지 않아 선택한 방법이었다. 낮에 의논해서 정리한 설계 도면은 설계 사무실로 보내어져서 2, 3일 후 준공이 가능한 세부 도면으로 돌아왔다.
'현관 위치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바꿀게요. 창문 크기를 좀 키워 주세요. 이쪽에 창문 하나 더 넣어 주세요. 여기는 미닫이 문 달린 가벽을 하나 세우고 싶어요. 계단 폭이 좁은 건 아닌가요?'
'창문을 더 넣고 창문 크기를 키우면 자재비가 올라갑니다.' '그럼 다른 곳에서 뭘 하나 뺄까요?'
'계단 폭은 보통 90으로 하는데 여기는 110이에요. 충분할 겁니다.'
설계 도면은 3개월 가까이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그렇지만 석축 디자인 결정하던 처음처럼 살벌한 분위기는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한솥밥 식구가 아니던가?
나는 이런 스타일로 집을 짓고 싶었다. 인더스트리얼한 분위기의 외장재도 마음에 들고 계단이 밖으로 나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건폐율이 50% 용적률 100% 인 집을 지어야 하다 보니 어떻게든 계단 면적이라도 줄이고 싶었다. 둥근 창문 디자인도 예쁘게만 보였다.
'비 오는 날 2층 주방에서 밥 먹고 3층 침실 올라가려고 우산 쓸 거예요? 눈 오는 날은 계단 얼어서 어쩌려고 그래요? 건축비 빠듯하다면서 둥근 문 만드는 인건비는 어쩔 거예요? 이렇게 집 전체를 벽돌로 다 붙이면 얼마가 들어 가는지 알고는 있는 거죠? 그리고 이렇게 폭이 좁은 디자인의 창문을 만들면 이사할 때 크기가 큰 가전제품은 어디로 넣을 건가요?'
'아놔, 뭐가 이렇게 생각할 게 많은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