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 중반을 넘어가던 때, 나는 본격적으로 커피에 흥미를 느끼던 시기였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 시기에는 하루에 열시간이 넘도록 카페에 있어도 좋았고, 커피를 공부하고 주변 사람들과 커피를 이야기하는게 행복했다. 물론 지금도 행복하다. 하지만 그 때의 느낌은 좀 달랐다. 계속 궁금증에 배가 고팠고 주린 배를 움켜쥐고 어떤 정보라도 배가 아닌 머릿속에 집어넣으려고 하던 시기였다. 커피를 하는 사람이라며 나를 소개하는 '바리스타' 라는 단어가 너무나 벅찼고 그렇게 카페인에 취해 늘 설레였던 시절이었다. 내 SNS와 생활은 자연스럽게 커피로 가득했고 그게 너무나 자랑스러웠던 때였다. 그러던 어느 날 거북이가 나에게 이야기했다.
"형 나 커피 수업을 좀 해줘."
당시에 나는 카페를 운영하던 사장도 아니었고, 수업을 전문적으로 하던 사람도 아니었다. 몇 번 사람들을 가르쳐본 경험이 있었지만 내가 선생이라고 할 만큼 교육에 자신감 있던 시절도 아니었다. 그저 커피를 좋아하고 행복해 할 뿐이었던 나에게 뭘 믿고 거북이는 그런 제안을 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거북이는 당시에 이미 여의도의 사무실이 밀집한 곳에서 꽤 바쁜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님이었다. 어떻게 보면 나보다 한 발 앞서서 커피를 하고 있던 사람이라고 해도 될 일이었다. 그런 거북이가 나에게 수업을 부탁하다니. 우선 이유나 들어보자고 했다. 아 그렇겠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해가 되었다.
당시 거북이는 카페를 운영하고는 있었지만 누군가에게 전문적으로 커피를 배울 시간을 가진적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항상 커피에 대한 갈증을 가지고 있었고 채워지지 않는 어떤 궁금증이 늘 존재했다. 하지만 카페는 정신없이 바빴고 하루를 마무리하면 이미 녹초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커피 공부를 하기란 여간해서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아, 여기서 잠깐 거북이의 성격을 알고 넘어가야 한다. 거북이는 말 그대로 거북이 같은 사람이다. 본인은 아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가까운 곳에서 관찰한 결과 '거북이는 거북이'가 맞다.
평소에는 어디라도 물어 넣어두면 또 잘 살아갈 것 처럼 단단하게 보이지만 주변의 변화에 민감해서 쉽게 오염되고 상처받기도 한다. 느릿한듯 하지만 먹이를 물 때는 재빠르다. 별 생각없이 헤엄치는 것 같다가도 잠깐 한눈팔면 어항을 탈출하는 치밀함(?)까지 가지고 있다. 그래서 거북이는 거북이다. 유유자적 느릿하다가도 목표가 생기면 세게 물고 잘 놓지 않는 그야말로 반전매력을 가지고 있다. 평소 학교 생활을 할때도 거칠고 투박해보여도 내심 여리고 사람을 잘 챙겼다. 한번 정주면 꽤 오래 정을 쌓아가는 스타일이다. 무심하게 말하는 듯 해도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자 다시 돌아와서, 그런 거북이에게 불을 지피는 사건이 생긴 것이다. 그 날도 어김없이 바쁜 점심러시가 지나고 중년의 한 남자가 거북이가 운영하는 카페를 찾아와서 에스프레소를 시켰다. 이게 바로 거북이 각성사건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