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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똑바로 써라 핫산 Mar 16. 2016

어둠의 동굴 속 멀리 그대가 보여

물피 도주 사건의 어려움과 마무리

글을 시작하며


 일단 사과를 드리고 시작할까 합니다.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글을 쓰자고 스스로 약속했고 분에 넘치게도 관심을 받아서 신나서 브런치에 글을 게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글로 인해서 꽤 장시간 절필(?)을 했었습니다. 많이 기다리고 계신 분은 없을 수도 있지만 어찌 되었건 스스로와의 약속을 어긴 저에게도 사과를 합니다. 


 변명을 하자면 이번에 자동차 물피 도주 사고가 있어서 이래저래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기간을 겪어 왔습니다. 다행히도 가해자를 찾았고 원만하게 사고 처리를 하여 홀가분한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저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 계신 분이 있다면 제 경험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건의 시작


 때는 2016년 3월 11일 금요일 저녁 7시 15분 경 이었습니다. 불금을 맞이하여 일찍 퇴근을 하기 위해서 지하 주차장에 있는 자동차를 꺼내 회사 앞에 있는 길가에 주차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퇴근하고 나오는 저를 놀라게 한 것은 운전석 쪽의 범퍼에 엄청난 스크래치였습니다. 야간이라 멀리서 보면 쉽게 보이지 않는데 각도를 달리하니 상당히 지저분하게 나있더군요.



 이때 이런 경험이 전무한 저로서는 이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있었습니다. 원인 불명의 흔적과 특별한 목격자나 단서가 없어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그야말로 멘붕의 상태였습니다. 뭐든지 처음 경험하는 것들은 아무리 정신력이 뛰어나도 의연하게 대처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최초에는 앞뒤에 주차되어있던 차주들과 연락하여 상시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하는데 주력했습니다. 또한 앞쪽 도로는 왕래가 잦은 도로다 보니 목격자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결국 이날은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하고 연락처를 받은 후에 귀가했습니다.


 하지만 귀가 후에 확인해본 영상에는 사고가 날만한 징후가 없었습니다. 대로변의 차들이 상당히 여유 있게 움직일 수 있는 곳이고 사람들의 왕래도 퇴근시간이라서 잦은 편이라 이쪽에서의 사고는 사실상 아닐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제 남은 곳은 지하 주차장과 집 주차장 정도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낮에 가까이서 보니 가슴 아프게 다쳐 있습니다. 야간에는 범퍼와 휀다의 경계에 칠 벗겨짐이 있어 그러려니 했었지만 실제로 휀다 판금 부분이 찍힌 자국이 보였습니다. 범퍼는 단순 교체에 해당되지만 휀다 부분은 실제 사고 이력으로 잡힌다 들어서 1년도 안된 제 차를 보고 있노라니 안타까웠습니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것저것 찾아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사고의 여파


 2주 정도 세차를 해주지 않아서 차가 많이 지저분해서 주말부터 날씨가 풀린다 하여 세차를 계획하고 있었지만, 그 계획이 흐트러져버리고 말았습니다. 평소에 계획을 꼼꼼하게 세우지는 않는 성격이지만 계획했던 일을 자의와는 상관없이 하지 못하니 바보가 되어버렸습니다. 우울하게 지내고 있는 제 모습에 집안 분위기도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 인고의 시간을 지내면서 스스로가 상당히 무기력해져 가는 걸 느꼈습니다. 평소에는 하지 않던 자기반성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그야말로 회고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결국은 시간이 해결해 줄텐데, 나는 이렇게 참을성이 없이 조급한 성격인가?
평소에 차가 어떤지 잘 살펴볼 걸! 괜찮겠지 하고 너무 차에 관심이 없었나?
차에 너무 애정을 쏟아서 상심이 큰 건가?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지금 와서 생각해보던 이런 말들은 결국 자학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사고의 당사자라면 어느 누구라도 저와 같은 심정일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들을 결코 부끄러워하거나 자책할 필요가 없습니다. 결국 이런 상황은 피해자가 만든 상황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주말 내내 가졌던 이런 우울한 감정을 뒤로 하고 근처에 있는 지구대로 향했습니다. 경찰 분께서는 관내 경찰서를 찾을 것을 권해주셨고 곧바로 분당경찰서로 향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처음 알게 된 용어가 물피 도주라는 말인데, 우리가 흔히 표현하는 뺑소니와는 조금 다른 개념입니다. 물적 사고만을 두고 도주한 것은 물피 도주라고 표현을 하고 인적 사고를 두고 도주한 것은 뺑소니라고 합니다.


 이 물피 도주라는 사건을 통해서 주말 내내 마음이 조각조각 나게 되었습니다.






전환의 기회


 분당경찰서 교통조사계에서는 주말에도 근무를 하고 계셨습니다. 짧은 대기시간과 함께 사건 정황에 대한 조서를 작성하고 곧바로 조사원을 배정받았습니다. 사건 당사자와 같은 조급함은 아니겠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사건을 접수하고 내용에 대한 확인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에 스스로 뭔가 대처를 해보겠다는 생각에 많은 부담감과 시간들을 투자했지만 결국은 제 스스로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출처 : 위키피디아 "분당경찰서"


 왜 곧바로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요? 빠르게 경찰서에 교통사고 조사를 요청했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후회했습니다. 일단 경찰서를 통해서 사건이 접수되면 상당히 많은 상황이 좋아집니다. 당사자만큼의 무게는 아니지만 조사원께서 상당히 많은 조언을 해주십니다. 


 물피 도주라는 사건에 대한 대처 방법과 사건에 대한 다양한 접근 방식을 문답식으로 이야기해줍니다. 조사원님의 말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하루에 약 10여 건의 물피 도주 건이 접수된다고 하시기 때문에 다양한 사건들을 접한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대략적인 가해자 행동 패턴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경찰서에 사건으로 접수가 되면, 주변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더욱 수월하게 다가오게 됩니다. 저는 일단 확보하고 싶었던 것이 지하주차장과 회사 건물 앞의 CCTV 였습니다. 사건을 예측할 수 있는 시간대에 대한 정리가 완료되었으나 건물마다 있는 방재실에 방문했을 때 직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그럴만합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급하다며 CCTV를 보여달라는데 어서 오십시오 할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러나 사건 접수 후에 조사원을 대동하고 나니 아주 친절하게 CCTV를 보여 주었습니다.






모든 것은 뜻대로


 저는 조사원께서 약속한 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마치 소풍날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CCTV만 확인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으로 알고 있었고 마음고생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약속한 시간이 왔고 방재실에서 당일 영상을 살펴보았습니다.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주변의 차량이 이미 제차보다 먼저 와서 주차를 해두었고 심지어 출차 때는 제 차가 먼저 출차 되는 광경을 보고 있으니 눈앞이 새하얘지더군요. 몇 번 그 CCTV 영상을 돌려 보았지만 절망감만이 다가왔습니다. 조사원분은 그런 저를 측은하게 여기셨고 이미 저는 우울함의 나락에 빠져있었습니다. 최초 사건을 발견했을 때의 기분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기분을 안고 회사 건물 CCTV를 또 확인해 보았지만 이곳 역시 단서가 될만한 정보는 없었습니다.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


 모든 것은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너무 기대가 컸던 탓일까요? 그렇게 사건이 종결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예기치 않게 만들어진 상황에 가해자는 없고 오로지 피해자만 있으니 억울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이런 절망스러운 모습을 하고 집으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더군요.


 아내는 애써 태연 한척하면서 저를 위로하려 했지만 이미 부부 모두가 침울해져 있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잘 오질 않더군요. 어찌해야 하나 어쩌면 좋나...






내가 바로 정의다


 아침에 눈을 뜨고 나니 거짓말처럼 절망적이었던 기분이 사라졌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제껏 봤던 영상 속에서 단서를 발견 못하였으니 마무리가 안되면 내가 책임을 지면 된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한결 상태가 좋아졌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조사관께서도 일방적으로 제가 주는 정보만을 토대로 사건을 추리하는 것인데 어쩌면 제가 정보를 취득하고 있지 않으니 한계가 있는 것 같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때문에 집에서의 CCTV를 살펴보았습니다. 결론을 짓자면 사건 발생 이틀 전 아침 출근하는 제 차의 모습이 멀쩡했다는 점입니다. 지하 주차장에서의 9일, 10일 영상을 보고 나서 단념하자고 마음을 먹고 또 한번 방재실로 향했습니다. 애초에 마음을 비우고 있으니 아무 생각이 없더군요. 사전에 연락을 통해 관리 사무소 직원께서 친절하게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놀랍게도 사건의 가해자를 찾을만한 영상을 확보했습니다.



3월 9일 오전 8시 48분경, 제 차가 주차하는 모습
3월 9일 오전 9시 31분경, 가해 차량이 비좁은 제 차 옆에 여러 번 오가면서 주차하는 모습
3월 9일 오후 1시 29분경, 가해 차량이 출차를 하던 도중 차에 부딪혔는지 멈칫하는 모습
3월 9일 오후 1시 29분경, 이후 크게 돌아 차를 뺀 후에 차에서 내려서 피해 차를 살피는 모습
3월 9일 오후 1시 29분경, 피해 차를 살폈지만 뒤돌아 차에 탑승한 후 그냥 출차하는 모습


아주 정확하게 위와 같은 영상이 찍혔습니다. 방재실에 도착한지 채 15분 정도만에 해당 영상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동안 너무 공허했던 영상만 봐서 하도 좌절을 많이 해서 그런지 마치 2002년 월드컵에서 안정환 선수가 이탈리아를 상대로 골든골을 넣는 장면을 본 듯 카타르시스가 몰려왔습니다. 이를 통해 조사원분께 해당 영상과 가해 차량 번호를 전달해드리고 결국 가해 차주께서는 순순히 잘못을 시인하시고 사과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이후 보험처리로 차량을 수리할 예정에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잘 마무리되는 과정으로 진행 중입니다.


출처 : 디아블로 3 씨네마틱 영상 : 2막 티리엘의 희생






글을 마치며


 우리가 보통 소설의 사건과 구성이라는 내용으로 살펴볼 때 이런 구성 요소들이 있습니다.

발단 -> 전개 -> 위기 -> 절정 -> 결말

 이런 저의 상황이 드라마틱하다고 해야 할까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까요? 판단은 제가 아닌 다른 분들께 맡기고 싶습니다. 저는 이번 일을 통해서 많은 것들을 배웠고 또 하나의 경험을 했습니다. 결국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즉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것이 답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말에서 사람은 피해자, 당사자 본인이 되고 하늘은 조사원 그리고 진짜 하늘(운)이 되겠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사고 상황 확인시에 혼자 당황하지 말고 가급적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차분해질 것 
2. 영상 확인에 주력하되 되도록이면 차량 충돌장면이나 가해자의 행동을 살펴보는 것을 확보
3. 꼭 사고 확인 현장이 아니라 전혀 예측 못한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일 수 있으니 사고가 일어날 수 있을만한 장소와 시간대를 좁혀서 정리해 둘 것.
4. 사건 접수 후에 기다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조사원에게 정보를 제공해 줄 것.


 어쩌면 물피 도주 가해자를 찾은 이후가 더 궁금하신 분도 있을 텐데 너무 짧게 표현을 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 겁니다. 조사원 분께 확인해본 내용으로는 물피 도주에 대한 처벌 근거가 없어서 통상적으로는 보험처리하는 정도의 수준으로 끝난다고 합니다. 이런 부분은 물피 도주 상황에 어느 누구도 죄의식을 갖지 않게 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더군요. 다행히 가해자 분은 원만하게 사과하시었지만 끝까지 잡아떼고 배 째라는 식의 사람들이 상당수라고 하더라고요.


 물피 도주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는 것은 상당히 허술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속히 이와 관련된 처벌 규정이 생겨서 마음 아파하시는 피해자 분들이 줄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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