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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킴 Feb 18. 2024

미국인이 좋아하는 테일러, 한국인이 좋아하는 아이유

팬이 아닌 사람이 본 인기의 본질

나는 아이유의 팬도 아니고, 테일러 스위프트의 팬도 아니다. 사실 그 둘을 잘 모른다. 그나마 아이유의 음악은 상점가에서 틀어주니 한 두번씩 접했지만, 테일러 스위프트는 틱톡에서 영상 몇 개 정도로만 접했을 뿐이다. 하지만 아이유의 새로운 곡 <Love Wins All>은 발매 1시간만에 멜론 TOP 100 1위에 올랐고, 곧 월드 투어 콘서트를 앞두고 있다. 작년에 데뷔 15주년을 맞이한 그녀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탑 아티스트이다. 테일러 스위프트 역시 사실상 지구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로, 현대카드 정태영 회장이 그녀의 디 에라스 투어 콘서트를 서울에서 개최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했을 정도다. 타임지는 2023년 올해의 인물로 테일러 스위프트를 선정했고, 4월에 출시될 그녀의 앨범 소식에 스포티파이 주식이 들썩이고 있다. 

2023년 타임지 올해의 인물을 장식한 테일러 스위프트와, 같은 해 15주년 콘서트를 한 아이유.


여러 정상급 아티스트들 중, 아이유와 테일러 스위프트의 인기 이유를 묻는 사람들이 유독 많다. 게다가 ‘아이유가 한국의 테일러 스위프트’인지, ‘아이유가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테일러 스위프트보다 더 유명했을지’를 비교하는 질문도 세트로 나온다. 이 글에서는 이 둘에 무지했던 사람이 각종 기사와 커뮤니티를 찾아 다니고, 음악을 듣고 가사를 읽으며 어렴풋이 느낀 그녀들의 인기 요인을 풀어내려고 한다. 제 3자의 시선에서 보건대, 둘은 놀라우리만치 닮아있다. ‘기타 치고 노래하는 이웃집 여동생’으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진정성 있는 가사로 동시대 여성의 마음을 대변하며 성장했다. 일거수 일투족이 대중의 주목을 받으며 스캔들에 휩싸였지만, 아픔을 숨기지 않고 노랫말로서 승화하며 대중의 마음을 되돌려낸 것마저 비슷하다.

아이유와 테일러 스위프트의 데뷔 앨범. 너무 풋풋해..!
    그녀들이 직접 쓴 가사를 보고 있자면, 마치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테일러 스위프트와 아이유는 싱어송라이터다. 아이유는 2015년 4집 전곡을 작사 작곡하며 프로듀싱까지 했고, 테일러 스위프트 역시 2010년에 발매된 3집 전곡을 작사 작곡 했다. 일부 사람들은 둘의 가창력이 타 아티스트 대비 그다지 뛰어난 편은 아니며, 음악도 무난한 편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아이유와 테일러 스위프트는 스스로의 이야기와 감정을 그 누구보다 가사에 진정성 있게 녹여내는 아티스트다. 15~16세 어린 나이부터 대중의 시선을 받았지만, 평범한 남들처럼 때로는 사랑에 실패하고 어느 때는 자존감이 낮아지는 하루를 노래하는 그녀들의 가사는 동시대 여성이라면 마치 나의 이야기처럼 공감하고 위로를 받게 된다. 


아이유의 노래 가사들.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 가사들


2020년 만들어진 테일러 스위프트 다큐멘터리 <미스 아메리카나>에서 그녀는 “음악인 저마다의 특별한 점이 있는데, 나에게는 그게 내 얘기를 음악에 담는다는 것이다. 내가 직접 곡을 쓰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못 왔을 것”이라고 스스로의 성공 비결을 명확하게 정의한다. 아이유 역시 앨범 소개를 직접 작성하기로도 유명한데, 미니 5집 <Love Poem>에서는 “앨범명을 뻔뻔하게 ‘사랑시’라고 지어 놓고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은 이유는 여기 담은 것들이 전부 진심이기 때문”이고, “‘Love poem’이 내가 사랑하는 나의 누군가에게 조심스레 건네는 응원이라면, 앨범의 첫 트랙인 ‘Unlucky’는 내가 나 스스로에게 부르는 응원가”라고 한 바 있다. 

<미스 아메리카나> 초반부. 테일러 스위프트가 집에서 고양이와 함께 작곡하는 장면, 빌보드가 불발되며 실망하는 장면이다.

아이유에 대한 음악 평론가들의 평을 들어보자. "앨범 제작 당시에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감정 등을 자신만의 어법으로 노랫말 속에 선명하게 새기되, 표현이나 스토리텔링 측면에서 조금 더 쉽게 풀어내고 있다." "'그러나' 하며 운을 떼고는 '내가 날 온전히 사랑하지 못해서 맘이 가난한 밤이야'라며 툭 던져놓듯 담담히 읊는 첫 소절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사람은 없지 않을까." BBC 테일러 스위프트와 아이유가 하나의 음을 반복적으로 배합한 ‘한 음 멜로디’를 자주 쓴다고 분석했다. 이 멜로디 구성은 대화 톤으로 가사를 읊조리는 느낌 때문에 다른 음악보다 가사에 더 집중하게 만드는데, 친한 친구에게 털어놓듯 이야기하는 그녀들의 가사와 잘 맞아 떨어졌다고 한다.


아이유 미니 5집 <Love Poem>에서 아이유가 직접 쓴 앨범 소개.

그래서 아이유의 팬덤 ‘유애나’와 테일러 스위프트의 팬덤 ‘스위프티’는 공통점이 있다. 팬들은 아티스트의 노래를 듣고 특히 가사를 곱씹으며 같이 성장하고, 함께 나이 들어가기를 원한다. 테일러 스위프트와 아이유는 팬들에게 있어 스스로도 명확하게 정의하지 못했던 그리움과 사랑, 아픔의 감정을 같이 느끼고 공유하는 ‘시절 친구’와 같은 존재다. 이들 팬덤의 화력은 단순히 선망하는 아티스트를 향한 감정을 넘어, 가사를 매개로 한 동시대 여성들끼리의 정서적 유대와 연대를 엿보게 한다.   


    그녀들은 스캔들과 논란을 겪으며 느꼈던 아픔과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아이유는 <스물셋> 앨범과 <나의 아저씨> 로리타 논란에 이어 일부 앨범의 표절 논란 등 부침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녀는 새로운 앨범을 내고, 새로운 드라마를 촬영하며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갔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그때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담담히 기술한다. <대화의 희열>에서 아이유는 <나의 아저씨> 논란으로 하차를 생각했다가, 당시 김원국 감독이 울먹이며 전한 ‘미안하다’는 진심어린 한마디에 다시 마음을 다잡고 드라마에 임했다고 한다. 자신을 둘러싼 스캔들과 논란에 모르쇠로 일관하는 대신, 어찌보면 약점까지도 대중에게 솔직하게 드러내는 그 진정성이 지켜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고통을 함께 이겨내며 성장하는 서사에 몰입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나의 아저씨> 하차를 생각했었던 아이유. 감독이 미안하다고 한 말에 계속 할 마음을 먹었다고. 


테일러 스위프트도 카니예 웨스트와의 질긴 악연으로 스캔들에 여러 차례 휘말렸다. 카니예 웨스트는 그녀의 그래미 수상 무대에 난입해 ‘비욘세가 수상해야 했다’며 초를 친 것도 모자라, 몇 년 뒤 자신의 노래 가사에 테일러 스위프트와 자고 싶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에 항의한 테일러 스위프트에 대해, 킴 카다시안은 그녀가 가사에 미리 동의한 듯 편집된 녹취록을 공개했고, 그녀는 논란의 한복판에서 ‘테일러 스네이크’라는 악명을 뒤로 한 채 1년 여를 미국을 떠나 잠적했다. 하지만 다음 앨범 <Reputation>에서 ‘예전의 테일러는 죽어서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가사와 함께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로 자신을 둘러싼 이슈와 가십을 정면 돌파했다. 


"뱀 같은 여자" Taylor Snake라고 비난 받았던 그녀는,  <Reputation> 앨범으로 복귀하며 자신의 오명을 대놓고 써버린다.  

<미스 아메리카나>에는 대중의 관심 속에 사는 그녀가 크고 작은 논란에 대처하는 모습을 자세히 보여준다. 178cm 큰 키를 지닌 그녀는 살이 쪄도 욕을 먹었고, 살을 빼도 거식증을 조장한다며 욕을 먹었다. 교우관계가 좋으면 패거리를 몰고 다닌다고 욕 먹었고, 이성관계가 좋으면 남자를 자꾸 갈아치운다고 욕을 먹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대중의 기호에 맞춰온 자기 자신’이 받은 마음의 상처를 부정하지 않고, 대신 그것에 초연하기로 한 마음가짐을 담백하게 전한다. “(너무 말라서) 아파보이는 것보다는 살쪄 보이는게 낫다고 스스로 결정했다”며 과도한 다이어트를 그만 두고, “더이상 입마개를 끼지 않겠다고.”


한 분석가의 글이 떠오른다. “대중의 칼날은 어린 여성 가수에게 더욱 날카롭다. 또한 어린 여성 가수가 한번 대중에게 미움을 사면 재기가 불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아이유와 테일러는 대중이 던지는 돌에 고개를 숙이기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진심을 전했다. 둘은 ‘여우’ 혹은 ‘뱀’이라고 비난하는 대중에게 자신은 ‘아이유’ 혹은 ‘테일러 스위프트’라고 답했다.”


정상에 오른 그녀들이 여전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더 나은 내 자신’이 저랬으면 좋겠다고 상상하게 된다.

아이유와 테일러 스위프트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음악적인 성과를 일군 아티스트일 뿐 아니라, 연예계의 넓은 인맥을 자랑하는 인성 甲 셀럽이자, 기부와 선행을 지속하는 미담 제조기이기도 하다. 아이유는 지금까지 50억 원 정도를 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2019년 강원도에 대형 산불이 일어났을 때나, 코로나19로 고생한 의료진 등 절체 절명의 순간에도 사람들을 돕기 위해 손을 내밀어 왔다. 테일러 스위프트도 며칠 전 슈퍼볼에서 총격 피해자들에게 기부했으며, 두 달 전에도 미국 테네시의 토네이도 피해자들에게 13억을 기부했다. 


이렇게 대중의 본보기를 자처하는 그녀들일진대, 자신의 팬덤에게는 어떻겠는가. 아이유는 작년에 15주년을 맞이해 팬 콘서트를 열었는데, 15~20만원 대에서 형성되는 콘서트 가격을 10만원 이하로 낮췄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코로나19 때 월세를 못 내는 등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한 팬들에 3000달러씩 입금해주기도 했다. 물질적인 걸 차치하고서라도, 그녀들이 팬덤에 오랜 기간 쏟아온 진심어린 정성과 사랑이야말로 15년 넘게 팬들과 함께 나이 들어갈 수 있는 기반이 되어주고 있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아이유 혹은 테일러 스위프트의 인기 요인을 물어보는 글에, 팬에 대한 사랑이 절대 빠지지 않는 비결이기도 하다.


‘육각형 인재’라고 일컬을 수 있는 그녀들이지만, 가장 돋보이는 건 정상에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자신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이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40곡 정도 소화해야하는 콘서트 준비를 6개월 전부터 런닝머신을 뛰면서 40곡을 완주하는 트레이닝을 한다고 한다. 아이유는 <대화의 희열>에서 스스로의 인기에 거품이 껴있는 것을 느끼고 그 거품을 단단하게 바꾸기 위해 직접 프로듀싱까지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나온 앨범이 Zeze, 스물셋 등의 곡이 실린 미니 앨범 4집 <CHAT-SHIRE>다. 

그녀들을 보고 있자면, 처음에는 마치 나처럼 삶의 고달픔이나 사랑의 아픔 같은 일상의 감정을 겪는구나 싶다가도, 역경에 무너지지 않고 꾸준히 자신의 영역을 개척하면서도 주변 사람까지 챙기는 모습을 보며 ‘나보다는 더 나은, 매일 조금씩은 더 나아지고 싶은 내 자신’을 상상하게 된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미스 아메리카나>에서 “이전에 내가 쌓아 올린 것들을 넘어서지 않으면 실패한 것”이라며 불안해하면서도, “결국 내가 배운 것은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든 계속 무언가를, 예술을 만드는 것”이라며 두려움에 맞선다. 

2023년 타임지 올해의 인물의 또다른 표지. 컨트리 가수로 시작한 테일러 스위프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듯 하다.


아이유 역시 10년 후 자기에게 편지를 보내며, “과거의 지은에게 빚지지 않기. 나는 20대에도 열심히 살았으니까, 30대에도 열심히 살아서 과거 지은에게 빚지지 않고, 자신을 사랑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들을 잘 모르던 나 역시도,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매일 더 성숙해지는 그녀들을 보며 응원하는 동시에, 내 자신을 투영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그녀들이 음원 깡패라는 소리를 들으며 콘서트를 매진시키는 것으로도 모자라, 사회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대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하며 이 글을 마친다. 

보그가 아이유에 헌정하는 특집 기사를 썼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 아이유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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