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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킴 Apr 12. 2024

총선 승리의 주역에는 ‘대파’가 있다

대파 챌린지, 대파 밈의 마케팅 전략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했다. 민주당 175석, 국민의힘 108석, 조국혁신당 12석으로 범야권이 187~188석을 거머쥐었고, 대통령실은 국민의 선택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며 큰 폭의 국정쇄신을 예고했다. 여당은 왜 졌을까? 결국은 윤석열 정권심판론이 먹힌 것인데, 여러 실정 중에서도 대표적인 키워드를 꼽자면 김건희(디올백), 이종섭(채상병), 대파다. 이번 글은 ‘대파’가 어떻게 평범한 채소에서 정권 심판의 상징이 되어 대중들이 갖고 노는 이른바 '밈'이 되었는지 정리해보고자 한다. 

외신들의 총선 기사. '대파 (spring onion)'를 언급한 점이 눈에 띈다. 


프레시안에서 이른바 ‘대파 대첩’의 서막을 자세히 잘 정리해놓았다. 윤석열은 3월 18일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방문했고, 원래 4250원이던 대파 가격이 각종 할인과 지원금으로 875원으로 낮춰져 있었다. "저도 시장을 많이 봐봐서 대파 875원이면 그냥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이 된다.” 이 발언이 대파 대첩의 시작이었다. 


대통령의 발언은 보도 되자마자 큰 논란에 휩싸였고, 최근 치솟은 물가로 인한 경제적 부담 때문에 민심은 부정적으로 요동쳤다. 안 그래도 정권 심판을 총선 프레임으로 짜놓은 민주당은 이때 ‘유레카’를 외쳤을 것이다. 대파는 윤석열 정부의 경제 정책 실패의 상징이 되었고, 민주당은 이를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지역구 후보자들을 대동해 #대파챌린지를 시작했다. 당장 이재명부터 유세 현장에서 대파를 손에 들며 “850원짜리가 맞냐며" 신호탄을 쏘았고, 전북 전주시갑 후보자 김윤덕이 페이스북에 전주의 마트에서는 대파 가격이 7980원이라며 다음 타자로 충북 청주 흥덕구와 경기도 화성 동탄 후보자를 지목했다. 후보자들은 저마다의 지역구 마트를 방문해 대파 가격을 찍어서 올렸고, 다음 후보자를 주목하며 공세를 이어나갔다. 윤석열의 발언이 18일, 이재명의 반격이 19일, 후보들이 챌린지를 시작한 시점은 20일이다. 챌린지는 불씨가 있을 때 불을 확 붙여버려야 화력을 얻을 수 있다. 민주당도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대파 챌린지. 챌린지 전문가가 붙은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빠르고 유효했다.

‘대파 챌린지’가 마무리 되며 이른바 대파 대첩이 일단락 되나 했는데, 경기 수원정 이수정 후보가 본인의 정치 생명을 담보로 대파의 수명을 연장시켜버렸다. 그는 윤석열의 대파 875원 발언을 옹호하며 한 단이 아닌 한 뿌리 가격을 말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이 발언이 널리 퍼진 것을 기점으로 ‘대파'는 정권 심판의 프레임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재명은 그 이후 ‘대파 유세’를 다녔다고 할 정도로 이 오브제를 반복적으로 활용했다. 용인에서는 한 지지자가 헬멧에 대파를 붙여 건네자 그것을 직접 들어보였다. 민주당의 스핀오프 정당 조국혁신당의 조국도 대파를 들고 전국을 누볐다. 

이때부터는 그냥 대파가 아닌 여러가지 변형 버전이 나오기 시작한다. 

'대파'가 정권 심판의 프레임이 되자, 민주당 선거본부는 투표 독려 포스터에 아예 대파를 박아버렸다. 아래 이미지는 민주당에서 각 지역구 후보 선거 본부에 공유하는 일종의 이미지 가이드 같은 것이다. 기업으로 치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정리한 가이드인 셈인데, 지역구 후보들이 총선 당일 투표를 독려할 수 있도록 페이스북 등에 배포하거나 인쇄하여 유권자에 나눠주는 홍보물 이미지 가이드의 주제를 대파로 잡아버린 셈이다. 하필 그 대파가 담겨져 있는 봉투는 디올백이라서 더 눈길을 끈다. 


이수정의 발언으로 대파가 정권 심판의 프레임이 되었다면, 선관위는 대파를 '밈'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선관위는 사전투표 당일 "대파를 소지한 선거인에게는 사전투표소 밖 적당한 장소에 대파를 보관한 뒤 투표소에 출입하도록 안내하라"는 공지를 각 투표소에 보냈다. 이것이 알려지며 (민주당 지지자일 가능성이 높은) 유권자들은 직접 대파를 들고 투표하러 가기 시작했다. 젊은 층의 투표 인증 문화에 '대파' 이미지가 결합한 것인데, SNS를 통해 대파 인증샷이 여기저기 퍼지면서 '대파'는 민주당의 총선 프레임을 넘어 유권자의 손에 쥐어진 놀이 문화이자 이른바  ‘밈’이 되었다.


대파 투표 인증샷은 조금만 검색해보면 인터넷에 차고 넘치지만, 대표적인 이미지 몇가지만 갖고 와 보았다. 

대파를 뜨개질 해가거나, 썰어서 가기도 하고, 대파 쿵야 마저 데리고 간다.  


대파를 차량 와이퍼에 꽂은 사람이나, 디올백과 식빵, 대파로 중무장한 투표단(?) 마저 등장하기도 했다.

대파가 금지되면서, 대파 모양을 뜨개질하는 등 대파 관련 2차 파생 콘텐츠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파 엠블럼이 수놓아진 티셔츠를 파는 사람, 대파 머리 장식(?)을 파는 사람 등 각종 희한한 대파 아이템들이 돌기 시작했다. 어떤 콘텐츠가 ‘밈’이 된다는 것은, 원본이 여러 차례 복제를 거치며 인터넷 세상을 떠돌다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자유롭게 변형, 재생산, 파생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파’는 여러차례의 발화점을 거쳐 점점 불이 붙었다가, 파생 콘텐츠가 본격적으로 생산되면서 총선을 넘어서 2024년 올해의 밈이 되었다. 

진짜 대단하다. 이 짧은 시간에 디자인과 유통, 마케팅을 이뤄낸 셈이다.

프레시안의 분석을 빌려오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정치가 예술과 닮은 점이 있다면 비정치와 비예술로 보이는 어떤 물건이라도, 어떤 개념이라도, 정치와 예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인물과 지지율로 그림을 그리든, 페인트와 붓으로 그림을 그리든 '세계를 재현'하고 또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의지는 갑자기 낯설게 등장한 오브제를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그것이 '들고 나른 옥새'든, '외국 회사 그 뭐 쪼만한 백'이든, 혹은 대파 한 뿌리든, 오브제들이 전통적인 의미를 벗어나면 근원적인 질문에 다가설 포털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의 심성과 행동은 낯선 오브제 앞에서 변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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