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고등학교의 카운셀러와 교감

한국 고교학점제에 필요한 원활한 소통시스템

by Mr 언터처블

20년 넘게 한국의 중고등학교에서 교단에 서 온 경험으로, 캐나다의 교육 현장을 관찰하는 일은 매 순간 '다름'을 발견하는 과정입니다. 특히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의 학업과 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카운셀러(Counsellor)교감(Vice-Principal)의 역할은 한국의 학교 구조와는 사뭇 달라 흥미롭습니다. 이들의 역할 분담과 소통 방식은 올해 전면 시행된 한국의 고교학점제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시사하는 듯합니다.


학생의 '내비게이션'이 되어주는 카운셀러(Counsellor)


캐나다 고등학교에서 카운슬러는 학생의 학교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핵심 인물입니다. 한국 고등학교의 담임교사, 진로교사, 상담교사의 역할을 모두 융합하여 수행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학업 코스 설계자: 매 학기 학생의 수업 선택을 돕고, 장기적으로는 학생의 대학 진학 목표와 흥미에 맞춰 최적의 코스를 설계해 줍니다. 한국에서 교사가 '입시 지도'에 전념하기 어려운 현실을 생각하면, 전문적으로 학업 로드맵을 그려주는 카운슬러의 존재는 매우 중요합니다.


학교생활 전반의 멘토: 단순한 학업 상담을 넘어, 학교 적응 문제, 친구 관계, 정서적 어려움 등 학교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문제에 관여하여 학생이 올바르게 성장하도록 돕습니다.


행정 처리의 중심: 방학 중에는 새 학기 수업 신청을 받고, 학기 초에는 수업 변경 요청을 처리하는 등 행정적으로도 바쁜 시간을 보냅니다. 이렇듯 카운슬러와의 관계는 수업 활동으로 생활기록부를 작성해 주는 교과 교사와의 관계만큼이나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합니다.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어하는 학생을 위해 학부모 상담을 통해 수업 변경, 대안 수업, 학생 튜터 연계 등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역할까지 맡으니, 카운슬러는 학생의 학교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학생 생활 지도'의 중심을 잡는 교감(Vice-Principal)


한국에서 교감이 교육과정 운영과 학교 운영의 행정적인 리더 역할을 수행한다면, 캐나다의 교감은 한국의 학생 생활 지도를 담당하는 '인성부장'에 더 가깝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생활 지도 및 문제 해결의 리더: 학교 내외에서 발생하는 학생들의 여러 가지 문제, 즉 부적응 학생의 전학 조치, 학교폭력위원회 운영, 타 학교 학생과의 갈등 문제 등 까다로운 생활 지도 이슈들을 직접 해결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교사와 관리자 간 소통의 연결고리: 교과 시간에 잦은 결석이나 숙제를 제출하지 않는 학생이 있을 경우, 교과 교사는 학부모에게 학생의 수업 태도에 대한 이메일을 보낼 때 카운슬러와 교감에게도 내용을 참조(CC)로 공유합니다.


학생의 올바르지 않은 수업 태도가 반복될 경우, 이 '참조 이메일'을 기반으로 학부모 호출과 함께 공식적인 면담이 이루어집니다. 이 과정은 문제 발생부터 해결까지의 과정을 문서화하고, 관련 당사자(교과 교사, 카운슬러, 교감)가 투명하게 공유하는 시스템입니다.


고교학점제, '시스템'이 해답이다


내년에 복직을 앞두고 한국의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 소식은 기대 반 우려 반입니다. 학생들이 이동식 교실을 하루 종일 돌아다니는 환경에서, 캐나다와 같은 원활한 소통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을지 궁금증이 앞섭니다.


학생 생활 지도의 핵심은 '교사의 헌신' 이전에 '시스템의 효율성'입니다.


신속한 정보 공유 시스템: 모든 교과 교사가 학생의 출결, 수업 참여도, 과제 제출 여부 등을 신속하게 공유하고, 문제가 반복되는 학생을 조기에 파악하여 카운슬러(진로/상담 교사)와 교감이 바로 개입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문서화된 소통 채널: 캐나다처럼 교과 교사 → 카운슬러 → 교감/교장으로 이어지는 '참조 이메일' 문화는 불필요한 사적 전화나 메신저 사용을 줄이고, 공식적이고 책임감 있는 소통을 유도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막연하게 '모든 교사가 담임과 같은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는 구호보다는, 시스템이 교사들의 수고를 덜어주고 학생 문제 해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캐나다 교육 현장의 카운슬러와 교감의 역할 분담과 소통 방식은, 학생 한 명 한 명의 성장을 지원해야 하는 고교학점제 시대에 한국 학교가 참고해야 할 실질적인 모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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