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어의 주인은 누구인가?

AI 번역기와 수영장 사이에서

by Mr 언터처블

캐나다에 터를 잡은 지 꽤 되었습니다. 비 냄새 섞인 겨울 공기와 눈부신 여름 햇살을 몇 번이나 만끽하며, 저는 이 아름다운 나라에서 매일 성실하게 영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메일도 척척 쓰고, 마트 계산대에서 캐나다식 스몰 토크를 주고받고, 가끔은 썰렁한 짧은 농담도 던지곤 하죠.


하지만 요즘, 문득 멈춰 서서 제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과연, 이게 진짜 '내' 영어인가?"


AI는 내 언어 학습의 올림픽 메달을 훔치고 있다


요즘 세상 참 편리합니다. 처음에는 제가 끙끙대며 쓴 영어 문장을 AI에게 조심스럽게 '문법 교정'을 부탁했었죠. 이마저도 기특한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저는 어느새 AI에게 완벽한 영어 문장 '생성'을 명령하는 언어계의 금수저가 되어 있었습니다.


"오늘 회의 취소 메일, 정중하게 써줘."


톡! 하면 몇 초 만에 원어민 교수님도 감탄할 만한 완벽한 문장이 튀어나옵니다. 얼마나 우아하고, 얼마나 편리한가요! AI는 제 전문 고스트라이터이자, 제 언어 능력의 완벽한 스턴트 더블입니다.


하지만 이 ‘완벽함’ 앞에서, 저는 생고생을 하며 수영을 배우던 시절을 떠올립니다.


수영 강사님은 제 엉망진창인 팔 동작을 보며 "여기 힘 빼고, 발차기는 이렇게요!" 하고 꿀팁을 주십니다. 그러면 저는 다음번 물살을 가를 때, 그 팁을 따라 하려다 물을 한 바가지 마시며 '익사하는 감자'처럼 허우적거립니다. 그 지난한 시간과 물 먹는 고통을 견뎌야 비로소 어설픈 '자유형'이라도 제 몸의 근육에 새겨지죠.


AI가 대신 써준 매끄러운 문장은 어떻습니까? 그것은 제 영어가 아닙니다. 제가 어떤 실수를 했는지, 어떤 문법 때문에 망설였는지 고민할 기회조차 주지 않습니다. 이 '나의 편리함'이라는 달콤한 독이 '나의 학습 기회'를 조용히 훔친 셈입니다.


그렇게 얻은 문장은 절대로 제 몸에 익은 '실전 자유형'이 될 수 없습니다.


소통의 레고 블록, 콩글리시로 쌓아 올리기


이런 식의 언어 사용은 우리를 '도구 의존형 인간'의 최강자로 만듭니다.

도구가 허용되는 공간 (이메일, 문자): 유창하고 매력적인 언어 능력 만렙의 주인공


즉각적인 상황 (전화 통화, 갑작스러운 질문): 뇌에 CPU 과부하가 걸려 말문이 막히는 꿀 먹은 벙어리

이 간극에서 얻은 교훈은 유쾌하게 명확합니다.


문법이 조금 틀리고, 단어가 투박할지라도, 심지어 소위 '콩글리시'가 튀어나올지라도 일단 우리가 가진 초라한 단어들을 조합해 스스로 문장을 뱉어내거나 써보려는 시도가 중요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영어를 '살아 숨 쉬는 영어'로 만드는 유일한 길입니다.


회의 중이든, 급박한 상황이든, 완벽한 단어를 고르느라 AI에게 컨설팅받을 시간에 일단 우리가 가진 '소통의 레고 블록'을 던져서 대화의 다리를 놓아야 합니다. 그 뻔뻔하고도 용감한 시도들이야말로 AI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오직 나만이 키울 수 있는 '실전 근육'이 될 테니까요.


AI는 나의 코치, 나는 나의 선수


AI에 무조건 의존하는 영어학습은 결국 우리를 '껍데기뿐인 영어 실력'에 안주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편안한 도구가 우리의 독립적인 언어 능력을 마비시키지 않도록, '적정한 거리'를 두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제 AI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대필 작가가 아니라, 우리의 엉성한 수영 폼을 지켜보며 팁을 주는 '수영 강사'처럼 활용해야 합니다. 서툴러도 우리가 직접 먼저 물살을 가르는 '선수'가 되고, AI는 곁에서 우리가 놓친 팁을 알려주는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영어권 국가에 오래 살아도 좋은 도구인 AI에게만 의존한다면 영어가 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글은 해외에 살면서도 나도 모르게 AI의 편안함에 쉽게 타협하여 너무나 소중한 영어 사용 기회를 놓치는, 저 자신에 대한 유쾌한 반성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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