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캄파니아주 나폴리
중정이 있는 숙소
라콘트롤라 호스텔 나폴리(La Controra Hostel Naples)은 첫인상은 좀 으스스했지만, 묵어본 결과 이 호스텔은 내가 여지껏 가본 10여곳의 숙소 중 최고였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숙소 안에 정원이 있다는 점. 이 숙소는 3개동이 ㄷ자 형태로 둘러서 있는데, 그 가운데 널찍한 정원이 펼쳐져 있다. 애초에 이 숙소에 예약한 것도 이 정원 사진을 보고 나서였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여유있게 머물고 싶었다.
아메리칸 블랙퍼스트
이 숙소에서 또 한가지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침식사가 공짜라는 점이다. 후레이크, 빵, 버터와 잼, 우유와 함께 요거트, 과일, 주스, 커피까지 알차게 먹을 수 있었다. 숙박비도 6인실 도미토리가 1박에 15유로(당시 환율 기준 1만8000원)로 저렴하다.
사실 앞서 로마에서의 나흘간은 매 아침식사를 카푸치노 한잔과 크로와상 하나로 때웠다. 이탈리아인 현지 습관을 따라한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공짜 아침을 마다할 이유란게 있을 리 없다.
한국 성인남자라면 커피와 빵 한조각으로 때운 이탈리아식 아침으론 오전 10시부터 허기가 지기 시작할 거다. 나폴리에선 든든하게 속을 채우고 하루 일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룸메이트들
나폴리의 밤거리도 마음에 들었고, 이 숙소도 너무 좋아서 난 나폴리에서의 일정을 하루 더 늘렸다. 그렇게 늘린 마지막 날 아침 위즐릭이란 여자와 인사를 나누게 됐다. 처음부터 쭈욱 같은 방 룸메이트였음에도 지난 이틀간은 마주친 적이 없었다. 내가 아침 일찍 나가 밤 늦게 돌아왔기 때문이다.
아침식사를 먹고 방으로 돌아온 나는 막 깬 그녀과 눈이 마주쳤다.
“Hi"
이 숙소는 여행자들끼리 자연스레 얘기를 나누게끔 하는 분위기다. 첫날 인도 출신 제스와도 그랬고, 스페인 출신 호세와도 그랬다. 위즐릭은 네덜란드에서 일주일간 여행 온 23세 대학원생이었다.
“그럼 너는 스페인에서 온 게 아니었어? 난 네가 호세의 아내인 줄 알았는데.”
난 여태껏 그 여대생이 호세의 아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호세가 위층 침대를 쓰고 있었던터라, 신혼부부라고 혼자 맘대로 생각해 버린 것.
“아니야, 걔하곤 나도 오늘 처음 인사했어.”
“오해해서 미안해."
한가지 부탁을 했다. 숙박일을 하루 연장했지만, 같은 방을 계속 쓸 수 없어 옆방으로 짐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카운터에 키를 반납하고 짐을 찾으러 올라올건데, 그때 문 좀 열어줄래?”
“물론이지.”
짧은 인사를 나누고 짐 정리를 마쳤다. 오늘은 나폴리 시내를 돌아다니기로 했지만 계획은 하나도 없었다. 당장 뭘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아 정원의 테이블에 앉아 잠시나마 이 숙소의 쾌적한 시설을 느껴보기로 했다.
호스텔에서 일하는 직원들 몇몇은 청소를 하고 있었다. 남미에서 온 한 흑인 스탭은 복도 한켠에 놓인 피아노를 연주했다. 스탭 중에는 숙소 일을 돕고 숙박을 해결하는 여행자들이 많았다.
미국 오클라호마에서 온 브리도 마찬가지였다. 오클라호마가 어디냐고 물으니 오클라호마 노래를 불러준 활달한 여대생이었다. 그에게 “이 호스텔이 지금껏 묵어본 숙소 중 가장 멋지다”라고 했더니 “남미에 가게 되면 꼭 가보라”며 호스텔을 추천 해줬다.
이제 숙소를 나서기로 했다. 숙소 앞 폐허로 남은 붉은 성당은 낮에 보니 무서운 느낌은 덜했다. 계단을 내려가니 위즐릭이 서 있었다.
“여기서 뭐해?”
“산텔모성(Castel Sant'Elmo)에 가려고 하는데, 구글맵 연결이 안 돼서.”
“그럼 내 걸로 찾아줄까?”
산텔모성은 걸어서 30분 거리였다. 친절하기 그지없는 이곳 숙소의 스탭이 체크인 때 산텔모성을 추천한 게 생각났다. '나폴리를 한눈에 보려면 꼭 가보라'고 강조했던 장소다.
“나도 합류해도 될까? 지금 딱히 계획이 없어서.”
“물론이지.”
나폴리 시내에서의 하루는 이렇게 동행과 함께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