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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용 Feb 06. 2021

Day 13, 해를 끼치지 않는 존재

숨고르기 연습, 서른여섯의 마지막 기록.

살다 보면 현실에 맞춰 많은 것을 타협하게 돼요
그럼에도 당신의 삶에서 이것만큼은
포기하고 살지 않겠다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요?

@mryon

 ‘매번 도움이 될 필요는 없지만, 해를 끼치지 않는 존재여야 할 것’

 방송일을 하다 보면 나의 작은 생각조차도 누군가의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곤 합니다. 그게 좋은 쪽이건 나쁜 쪽이건 말입니다. 시사 고발 프로그램을 하던 때의 이야기인데요. 시사 고발 프로그램에서의 일이라는 게 나쁜 놈 한 놈만 찾아서 왜 그놈이 나쁜지를 논리 정연하게 보여주기만 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그 나쁜 놈이라는 사람이 흉악무도한 범죄자 혹은 천인공노할 잘못을 저지른 정치인들이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대개 현장에서 만나는 ‘나쁜 놈’이라는 사람들은 소시민에 가까운 평범한 사람인 경우가 많습니다. 각자 나름의 사연이 있고, 사연을 듣다 보면 저도 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흔들리는 순간이 분명 찾아오더라고요. 인간적인 이입이 되기 시작하는 그 순간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순간인데요. 이때 생각과 판단을 잘해야 합니다. 그 순간에 내려진 선택과 결정에 따라 분명 누군가에게는 해(害)로 돌아가기 때문이죠. 진짜 나쁜 놈을 잡으면 다행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나의 헛다리가 그 인생에 큰 해를 입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피디가 되는 순간, 제 자유의지로 선택하지 않은 칼날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더 신중을 기하는 쪽을 택합니다. 유익(有益)까지는 욕심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적어도 누군가의 삶에 해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신념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위에서도, 집에 들어서면서도, 또 카페를 가서도, 혹은 고향에 내려가서도 ‘해를 끼치지 않는 존재’여야 한다는 원칙은 변함이 없습니다. 일을 하는 피디라는 역할도, 가족이라는 울타리도 제 자유의지로 선택하지 않고 부여받은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2020년, 서른여섯 끝자락에 서서 지난 날을 되돌아보며 쓴 글입니다.

2020년 12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magazine 컨셉진으로부터 총 31개의 질문을 받고,

매일 서른하나의 대답을 1000자 이내로 하며 써 내려간 기록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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