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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용 Feb 06. 2021

Day 14, 꽃 피는 봄이 오면 4월이 온다

숨고르기 연습, 서른여섯의 마지막 기록.

남들이 알아주든 말든
내가 봐도 내가 멋있을 때가 있어요
올 한 해 혹은 당신의 삶에서
당신이 가장 멋있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mryon

 올 한해는 워낙 이벤트가 없었던지라, 며칠 전 미루고 미뤄 왔던 창문 닦기를 마쳤을 때 속으로 ‘멋진 것까진 잘 모르겠고 대견은 하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육아휴직자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랄까요. (웃음)

 제가 바라보는 ‘나’는 항상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스스로에게 가혹하리만큼 만족을 했던 적이 그다지 없었던 것 같은데, 작년에는 평생동안 기억할 만큼 제 자신이 멋졌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거리의 만찬’을 제작할 때였는데요. 피디가 되고 나서 언젠가는 제 고향 제주 이야기를 꼭 방송에서 다루고 싶었는데, 시기적으로 기회가 잘 맞아서 ‘제주 4.3’에 대한 이야기를 2부에 걸쳐 풀었던 적이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제주 4.3에 대해 아는 바가 많지 않았는데 생존자 어르신들을 모시고 그때를 같이 기억하고 의미 있는 장소를 둘러봤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잊거나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길지 않은 준비 기간 동안 담아서 방송을 내고, 할머님들의 감사 인사를 받으며 ‘잘 해냈다’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꽃 피는 봄이 오면 4월이 오는, 그 제주도의 숨겨진 슬픈 이야기를 잘 표현하기 위해서 그림도 각별히 신경 쓰며 애쓰던 그때의 제 모습을 떠올리면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웃음) 우쭐한 감정은 물론 아니지만, 그때 처음으로 피디가 돼서 스스로가 멋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런 경험들이 천천히 차곡차곡 누적이 돼야 할 텐데 올해는 피치 못하게 방송 기회를 많이 잡지 못한 채로 한 해가 훌쩍 지나가 버리고 말았네요. 아쉬움이 크네요. 내년에는 조금 더 의미 있는 방송들을 잘 준비해서 그때의 애쓰던 제 모습을 다시 회복하고 싶군요.  




이 글은 2020년, 서른여섯 끝자락에 서서 지난 날을 되돌아보며 쓴 글입니다.

2020년 12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magazine 컨셉진으로부터 총 31개의 질문을 받고,

매일 서른하나의 대답을 1000자 이내로 하며 써 내려간 기록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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