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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용 Feb 04. 2021

Day 5, 행복의 순간

숨고르기 연습, 서른여섯의 마지막 기록.

2020년 올 한 해를 돌아봤을 때
당신이 가장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mryon

 아들 이준이의 첫 돌이 기억에 남는군요. 우리 곁을 어렵게 찾아온 이준이의 첫 생일이 이준이에게도, 우리 가족에게도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와 아내는 제 아버지의 귤 농장에 돌상을 차리고, 돌사진도 사진을 찍으시는 제 아버지가 손주를 손수 찍게 부탁드렸죠. 사진만으로 보면 단출할 수도 있지만, 아버지가 일궈놓은 땅 위에서 아버지가 사진도 찍어주시면서 이준이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었던 가족 모두에게 의미를 부여해드린 것 같아 내심 뿌듯했습니다.

 피날레를 장식했던 것은 역시나 이준이었습니다. 돌잡이를 하는데 카메라를 잡았다는 사실! 세상을 남다르게 보라는 의미에서 준비했던 사진기를 이준이가 잡아 드는 순간, 사진을 찍던 제 아버지와 제가 동시에 빵 터지고 말았지요. 3대가 모두 사진을 찍는 모습을 상상하니 왠지 모를 흐뭇함이 느껴지기도 했고요. 그 찰나의 순간에 몇 해 전 아버지를 따라 아내와 함께 새벽 출사를 따라나선 날이 생각났습니다. 오름 중턱에 올라 자리를 잡고 떠오르는 일출을 각자의 사진에 담으며 나와 아버지의 인생에 대해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추억을 이준이와도 함께 할 수 있으리라는 상상을 하며 진짜 내가 아빠가 됐다는 것을 새삼 느꼈지요.

 어제는 유튜브에서 Bruno Mars의 ‘Versace on the Floor’라는 음악에 맞춰 이준이와 함께 춤을 췄습니다.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두 살배기 아기가 현란한 손동작과 발재간을 부려가며 음악을 표현하더군요. 몸치인 저도 덩달아 지금의 행복을 몸으로 표현했습니다. 이준이가 이 순간을 기억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당연히 기억하지 못하겠지요. 하지만 그 공간에 울려 퍼졌던 그 노래, 이준이의 서툰 몸동작, 그리고 거기에 맞춰 터진 저와 아내의 웃음소리. 적어도 저는 오래도록 그 순간을 기억하리라 확신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행복감이었죠.




이 글은 2020년, 서른여섯 끝자락에 서서 지난 날을 되돌아보며 쓴 글입니다.

2020년 12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magazine 컨셉진으로부터 총 31개의 질문을 받고,

매일 서른하나의 대답을 1000자 이내로 하며 써 내려간 기록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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