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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용 Feb 05. 2021

Day 6,  가장 좋아하는 것들

숨고르기 연습, 서른여섯의 마지막 기록.

지금 당신의 삶에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 다섯 가지를 꼽는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mryon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들’. 열다섯에 처음 접한 그의 음악이 이리도 오래 저를 붙잡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저라는 사람의 팔 할을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음악은 제가 글을 쓰고 피디가 되는 데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죠. 아직도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skmt의 음악으로 마음을 다스립니다. 몇 해 전, 한국을 방문했던 사카모토 선생님을 독대했던 기억은 인생 최고의 순간이기도 하답니다

 ‘사진’ . 오래 전부터 카메라로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기억력이 좋지 못한 저를 위한 기록이자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순간을 위한 포착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말 없는’ 아버지와의 좋은 대화 주제이기도 하고요.

 ‘핸드드립의 시간’. 몇 년 전, 회사가 4개월 여 파업을 하던 때에 우연히 핸드드립을 배우게 됐습니다. 똑같은 원두와 똑같은 장비로 커피를 내리는데도 선생님이 내린 커피와 제가 내린 커피의 맛은 어떻게 그리도 다를 수 있는지.. (웃음) 그렇게 풍미에 대한 예민함을 발견하면서 시작을 한 핸드드립이지만 무엇보다 그 ‘과정’이 마음에 들어 매료된 시간. 물을 끓이고 원두를 갈고 뜸을 들이며 때를 기다리는 일련의 과정들을 행하며, 모든 일에는 역시나 과정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너무 모든 일의 끝단만 보고 살고 있지 않나.. 라는 작은 깨달음과 함께 말입니다. 작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 매일 아침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준이의 발 냄새’. 돌이 갓 넘은 작은 아이에게서 꽤 지독한 발 냄새가 납니다. (웃음) 근데 그 냄새마저 귀여워 아내와 저는 앞다퉈 냄새를 맡곤 합니다. 그러면서 ‘오늘이 이준이와 가장 가까이 지낼 수 있는 날’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크면 이준이와 저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졌지 더 가까워지진 않을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장난 섞인 놀이이긴 하지만 이준이의 발냄새 때문에 세 가족이 거실에서 웃는 일이 많아지는 일은 두고두고 떠올릴 수 있는 순간이 될 것 같네요.

 ‘아내와의 시간’. 외부의 시선에 극도로 예민한 저에게 아내와의 시간은 온전히 ‘나다워질 수 있는 시간’입니다. 바보같이 속내를 드러내도 흠 될 게 없는 것이 바로 이 시간이죠. 스무 살에 처음 아내를 만나 대부분의 인생 경험을 함께한지라, 가치관이나 생각이 비슷한 아내를 믿고 의지하고 있습니다. 감성적이고 감정을 진득하게 파고드는 저와는 달리 이성적이고 감각적인 아내가 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서, 이 사람이 나를 완성시켜주고 있다는 안도감으로 이어지고, 그 안도감이 저 스스로를 더 안정적으로 만들어주는 듯합니다. 앞서서도 언급했지만 ‘가장 편해질 수 있는 이 시간’을 조금씩 더 늘려가는게 저의 가장 큰 숙제이기도 합니다. 




이 글은 2020년, 서른여섯 끝자락에 서서 지난 날을 되돌아보며 쓴 글입니다.

2020년 12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magazine 컨셉진으로부터 총 31개의 질문을 받고,

매일 서른하나의 대답을 1000자 이내로 하며 써 내려간 기록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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