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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용 Feb 05. 2021

Day 7, 휴직이 준 빈칸

숨고르기 연습, 서른여섯의 마지막 기록.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하라는 말이 있죠
결과가 좋든, 나쁘든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도 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올해의 시도는 무엇인가요?


@mryon

아무래도 휴직을 결정한 것이 아닐까요. 물론 갑작스럽게 찾아온 몸의 이상 때문에 병가로 시작된 휴식이지만 ‘엎어진 김에 쉬어가자’라는 말을 따라 휴직을 결정하게 됐죠. 물론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진행하고 있던 새 프로그램 론칭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과 회사 내에서의 입지가 혹시나 좁아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죠. 그리고 무엇보다 더 근본적으로 ‘일을 하지 않는 나는 누구여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꼭 너는 누구여야만 하는가.. 꼭 규정을 지어야만 하는가.. 라는 질문을 누군가 던질 수도 있겠습니다. 일견 타당한 지적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에게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백수’로 돌아간다는 것은 퍽 큰 두려움을 동반하는 일입니다. 대학 졸업 이후 만 3년 동안 피디가 되기 위해서 문자 그대로 ‘백수’로 지내던 시절,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 이외에는 ‘그 어떤 누구’도 될 수 없었던... 적어도 저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었습니다. 가까스로 그 긴 터널을 관통해서 얻어낸 타이틀이 다름 아닌 피디였던 것이지요. 그런 연유 탓인지 ‘티비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자기규정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해 낼 필요성도, 동기도 없었습니다. 그랬던 저이기에 다시 잠깐이라도 무관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은 무모함 그 자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휴식을 선택했습니다. 일하는 김승용이 아닌 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라는 마음으로 시작된 휴직은 역설적이게도 저를 빈칸으로 만들었습니다.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죠. 열심히 달리던 차가 갑자기 멈추고, 두려움이라는 관성까지 버텨내니 이준이의 아빠, 아내의 남편, 부모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해보니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과감하게 해봐야겠습니다.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말이죠. (웃음)




이 글은 2020년, 서른여섯 끝자락에 서서 지난 날을 되돌아보며 쓴 글입니다.

2020년 12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magazine 컨셉진으로부터 총 31개의 질문을 받고,

매일 서른하나의 대답을 1000자 이내로 하며 써 내려간 기록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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