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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용 Feb 05. 2021

Day 8, 아버지의 시간

숨고르기 연습, 서른여섯의 마지막 기록.

올 한 해 당신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요?


@mryon



 올해도 역시 아버지이겠지요. 특별한 사건이나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일을 하다 보니 이 똑같은 과정을 미리 걸었을 아버지를 유독 많이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지금의 저처럼 아버지가 한창 일을 하실 때를 한번 상상해봤습니다. 마흔 중반 즈음의 아버지. 아직은 제가 가보지 못한 시간입니다.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지만, 한 가정을 꾸려 가족을 책임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죠. 내가 원한다고 앞뒤 가리지 않고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가장인 아버지 본인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아, 때려치울까-‘로 대변되는 수백 개의 난관 앞의 수천 번의 좌절을 아버지 역시 경험하지 않았을까요. 거기에 따르는 고통 또한 아버지라고 피할 요령은 없었겠지요. 그러면서도 다시 아침이 되면 일터로 나가야 하는 삶 속에서 때론 가족들이 원망스러운 순간들도 있었을 테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보다 가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아버지라는 존재는 내면의 목소리를 삼키는 일에 익숙해져 가도록 자연진화(혹은 자연도태)된 것은 아닐는지요.

 가끔 저는 이렇게 아버지의 시간을 상상하곤 한다. 회사에서 박살이 났을 때, 정말 일이 잘 안 풀려 도망가고 싶을 때, 아버지라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상상. 어쨌든 아버지는 모든 난관을 헤치고 지금 그 자리에 유일하게 계시기 때문이죠.

 제가 아버지를 처음 마주한 것이 아버지 나이 서른한 살. 그리고 지금의 제 나이 서른여섯. 이제는 그때의 아빠보다 지금의 제가 더 나이가 많습니다. 아버지는 흰머리가 늘었고, 저도 제법 흰머리가 늘었습니다. 여전히 저는 넘어야 할 산을 마주할 때마다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이렇게 저는 아버지의 시간을 복습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20년, 서른여섯 끝자락에 서서 지난 날을 되돌아보며 쓴 글입니다.

2020년 12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magazine 컨셉진으로부터 총 31개의 질문을 받고,

매일 서른하나의 대답을 1000자 이내로 하며 써 내려간 기록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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