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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하 Nov 29. 2020

서울

스노글로브

뾰루지가 많이도 났네 사춘기 지나는 이마처럼

지구에는 공기도 있고 물도 있는데 달처럼 상처가 그렇게 많을까.


서울, 내가 자란 서울에서  부스럼을 만든다. 스노글로브처럼 흔들면 먼지가 나지 예쁘게 깔아놓은 도로를 부순다 부숴 새로 만든 도로는 더 예쁜고 하니 꼭 그렇지도 않네. 그래도 과일 트럭 지날 때 수박이 깨질 일은 없겠다.

비 오는 날도 수레를 끌고 나선다. 오늘날은 말이 없어서 내가 끄는 인력거다. 가끔 남이 끌어주는 것을 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옆만 본다. 빗방울이 창문을 덮어서 시야가 몽롱해도 높이 솟은 젓가락들은 문제없이 보인다. 단단하게 지어져서 비바람을 견딜 운명이 안타깝구나, 뇌까리다가 내 코가 석자요 하고 만다. 아니 사실 저것들도 흔들린대. 흔들려야 안 무너진다는 모순을 이야기한다. 그래도 지진 오면 별 수 없겠지 오월에 눈도 오는데 언제까지고 당당하면 안 돼.


뿌연 해가 돋는 봄에 꽃놀이를 왜 가냐 묻는다면 내년에는 못 볼 수도 있어서요 답하지 못했다. 매년 가는 그 밭을 갈아엎었단다. 사진을 찍던 사람이 진드기에 물렸단다. 남의 피나 빨아 마시는 흡혈충을 없애보겠다고 밭에 불을 놓았는데 이제 소문이 나서 아무도 안 온다. 나쁜 벌레 새끼들. 그 작은 것이 온 동네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땅을 팔 생각이세요 물어보니 아니란다. 이제는 콘크리트 덮고 주차장으로 쓸 거란다.


새삼 구름의 원근이 실감 나 소름이 돋았다.


아휴 우울하다 우울해서 술을 마신다. 술이란 것은 마실 때만 좋다. 이유도 없이 술을 마시는 사람을 알코홀릭이라 부른다. 알코올에 의존하는 사람은 정신이 나약해서 그렇다. 여럿이 모여서 분위기에 취하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 식도에 화염을 붓는다. 몸이 무너지고 정신이 나가는 것도 모르고 밤마다 넘어가서 저승문을 보고 돌아오는 것이 틀림없다. 얼큰한 코를 훔치며 걷다가 육십 년대 레코드판을 틀어놓은 카페 앞에서 나 닮은 가로등 하나를 보았다.


차에 받혔는지 허리를 움푹 접고 도로에 원산폭격하는 꼴이라니 왜 그러고 있느냐 살기 싫어서요 그래도 살아야지 그게 중요한가요 내가 묻고 내가 답한다. 날씨가 따뜻한데 입김이 난다 알코올에 속이 설설 끓어서 그런 것이리라.


벌레 새끼들아, 빨 테면 빨아봐라 꽃밭이었던 곳에 앉아서 몸에 흙을 바른다. 내 장래희망은 바로 이것이요 흙이 되는 것이요. 원래 선생이 되고 싶었는데 누가 누굴 가르칩니까. 훌륭한 아이들을 나 같은 벌레로 만들 이유가 없지요. 그런 미시적인 것들 말고 나는 지구가 된다. 지진이 와도 두려움이 없지요. 높은 것들은 매일 공포에 떤다. 떨면 무너지지 않을 거라면서 내가 흔들면 꼼짝없이 추락할 희세의 병신들이다.


도로가 멀끔한데 과일 트럭이 다닐 거라 기대한 것은 잘못이었다. 깨진 수박을 반값에 팔던 장수는 막걸리 진탕 먹고 운전하다 가로등 들이받고 세상을 떴다 한다. 이 차선 도로의 포트홀은 그에게 일자리였는데 구멍이 메워지고 사 차선으로 넓어지더니 주정차 단속 카메라가 생겼다. 오 분이면 운전자가 타 있어도 벌금이라 골목에 숨어서 장사를 하니 매상이 반 토막 난 것이다. 가게를 차릴 것이오 묻기도 전에 그의 머리가 깨어졌다. 당신이 팔던 뻘건 수박처럼.


일부러 흔들지 않으면 먼지도 안 나지. 안 그래도 매캐한 공기를 흐리는 강바닥의 미꾸라지가 이 스노글로브의 주인이란다. 누가 없어져도 다 알지 못하고 낙서를 지우고 구멍을 덮어 만든 좁은 땅덩이에서 다리 달린 것들이 바퀴를 굴리고 사는 곳에, 끔찍이도 작은 이 수조에 너와 내가 산다.


죽으면 서울의 흙이 될래요, 유언장 첫 줄이다.


스노글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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