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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하 Nov 30. 2020

8월

여름의 전형

유난히 더웠던 여름

뇌에 화상이라도 입었던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직사광선의 열감이 아직도 생생해요


말하자면

두개골이 스펀지가 된 느낌으로

밀짚모자를 쓰고 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도

머리는 주위의 온 습기를 먹는데 집중했어요


나는 달리고 옆에는 개 한 마리가 있어요

아스팔트 임도는 공사가 막 끝났는지 깔끔해요 참나무가 막 흔들려요

바람 덕분에 서로 만날 수 있는 가지들처럼

나도 그렇게 너를 만났지요, 그럼요


비가 온 다음날이라 더 맑았어요 당신은 아마 회색 자전거를 타고 있었지요?

마악 달리는데 앞질러가는 자전거가 야속해서 소리를 질렀어요

맨발로 페달을 밟다가 돌아보는 얼굴이 그렇게 예쁠 수 있을까요

꽃무늬 티셔츠를 좋아하는 것도 당신 때문이에요 알고 있나요

개는 나보다 빨라서 자전거를 따라잡는데 그게 무서웠나 봐요

방향을 잡다가 결국 넘어졌는데 나는 남자아이라 어쩔 줄을 몰라해요

강아지도 미안한지 뺨을 연신 핥아대는데 또 그게 간지러웠나 봐요

울다가 웃었다가 갈피를 못 잡은 입 꼬리를 가끔 따라 해 보곤 합니다


첼로 줄을 잡은 손에는 송진가루가 묻어있었어요 그걸 코에 묻히고 놀았지요

나는 목소리가 악기였어요 첼로의 낮은 도는 나의 라, 언젠가 말해주려 기억하고 있어요

조율하는 첼로는 헛기침하는 애늙은이 같아요 목을 조이면 쩌억쩌억 곡소리를 내잖아요

비 오는 날 관현악단을 보러 가면 젖은 나무 냄새가 나요

그때 그 첼로는 잘 있나요 여전히 소 울음소리를 내지요?

나도 이제 제법 낮은 소리를 낼 수 있답니다


타임머신! 시간을 여행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한 장면을 꼽자면, 너무 많은 사람이 모인 축제요

눈만 내놓은 사람 말고 이빨 보이며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누구는 돗자리 누구는 신발 따위를 깔고 하늘만 보던 밤이요

펑 펑 폭발하는데 불꽃이 모두를 삼킬 듯 달려들어요

우와하고 가슴이 뛰어요 물에는 쌍둥이 도시가 데칼코마니예요

피날레가 터질 때 사랑 고백하는 사람들을 비웃을 수는 없지요

심장은 몇 번이고 입을 맞췄으니까요


당신에 놀러 간 것이에요 영영 살지 못해요

터지는 것처럼 시간도 흩어지고 빛을 잃었어요

흑백으로 기억하고 말아요 마땅한 색이 없잖아요

바삭 마른 낙엽은 조심스러운 발자국에도 부서지기 바쁩니다

노을 지는 언덕은 여기저기가 붉어서 기억을 더듬게 해요

나도 흘러볼까요 저 어린 조각들처럼


여름은 그런 계절이에요

마루에서 콩국수를 먹고 옥수수 뼈로 하모니카를 부는

별을 세다가 모시이불을 찾는 아홉 살 먹은 밤

우리는 눈을 뜨고서 낮잠을 자곤 하지요

말하자면 이런 나른한 사건이 한 번쯤 있었으리라 하는 회고입니다


2020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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