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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인 Jul 25. 2024

9. 고산병과 함께 하는 여행,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북부에서 육로 국경을 넘어 볼리비아(Bolivia) 투피사(Tupiza)에 도착했다. 엔텔(entel) 오피스를 방문하여 유심을 개통하고, 이틀에 걸쳐 ATM과 씨름하며 볼리비아와 친해지려 애써보지만 쉽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투피사에서 우유니(Uyuni)까지 기차를 타고 갈 계획으로 왔는데 현재 운행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차선책으로 우유니까지 3박 4일 투어를 통해 가기로 한다.      


차량 한 대에 운전기사와 식사 도우미, 투어객 5명이 탑승하고, 두 대의 투어차량이 함께 다닌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벨기에, 칠레 등에서 온 10명의 투어객들은 20대부터 60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하고 직업도 가지각색이다. 가끔 영어 가능한 일행의 설명을 주워들을 때도 있지만, 예습을 안 한 데다 스페인어 장벽에 막혀 눈과 마음의 감각대로 유적지와 자연을 즐긴다.   


Sillar, Agur Pampas, 과거에 은광산이 있던 Pueblo Fantisma를 거쳐 Laguna Morejon에 다다르니 어느새 고도 4,855m까지 올라왔다. 전기가 안 들어와 자가발전으로 희미하게 밝힌 불빛에 의지해 서류를 작성하고 국립공원 내에 있는 첫째 날 숙소로 간다. 


기온은 영하로 뚝 떨어졌는데 난방시설도 없고 온수도 나오지 않는다. 옷을 잔뜩 껴입고 침낭 속에서 이불을 덮고 누웠는데도 춥다. 한기를 막으려 이불을 얼굴 가까이 끌어올리니 숨이 안 쉬어져 기겁을 한다.   

   

고산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노천 온천에 잠깐 들렀던 것이 기분에는 도움이 되었으나 고산병을 더욱 악화시켰는지도 모른다. 붉은빛 호수에서 노니는 고고한 플라밍고와 귀여운 야마들, 유황냄새 진동하는 간헐천, 이색적인 호수들을 보는 동안 두통은 점차 심해진다. 차만 타면 잠이 쏟아진다. 타이레놀도 코카 캔디도 소용없다.      


두 번 째날도 열악하고 추운 밤을 보내고 나니 이젠 낮에도 몸이 으슬 으슬해서 종일 겹겹이 옷을 껴입고 다닌다. 일행 중 제법 친해진 프랑스에서 온 은퇴자가 오늘 말을 한마디도 안 했다고 괜찮냐고 묻는다. 고산병 증세에 '말 잃음’과 ‘매사 의욕 없음'이 추가된다.      


그래도 무기력하게나마 근근이 몸을 움직일 수 있으니 다행이다. 위중한 고산증세가 나타났다면 중간에 투어를 포기해야 할 텐데 이 고산 깊디깊은 오지에서 혼자 나갈 방법이 있을 성싶지 않다.      


화산 활동 때 떨어져 나온 돌덩어리들이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는 ‘Arbol de Piedra’를 지나니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광활한 사막이 나오고 기사가 신나게 속력을 낸다. 운전할 맛 나겠다. 

우리는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원시적인 대자연에 감탄한다. 매일 두세 컵씩 마시는 기분이다. 사막과 비포장도로의 흙먼지 때문에 머리가 더 지끈거린다. 유난 떠는 걸로 보일까 봐 망설이던 마스크를 결국 3일 만에 혼자 꺼내 썼다.     


셋째 날 저녁 무렵 드디어 우유니 사막에 도착했다. 일몰을 감상하고 소금호텔에서 숙박한 후, 우유니의 일출을 보고 사진 찍기 놀이를 한다. 우기가 아닌 데다 혹시나 했던 비가 역시나 내리지 않아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우유니 소금사막의 환상적인 반영 풍경을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아쉽지 않다. 우유니고 뭐고 몸은 휴식만 갈구하고 있으니. 천하의 절경도 컨디션이 안 좋으면 눈에 차지 않는구나.   

  

투어는 기차무덤 코스를 마지막으로 2시가 넘어 끝났다. 3박 4일 동안 경험한 모든 광경이 인상적이었고 이색적으로 아름다웠으며 일행들과 흥미롭고 즐거운 추억까지 쌓았지만, 예상보다 훨씬 낙후된 비문명 세계를 체험하며 비포장도로와 흙먼지, 고산병과 씨름하느라 체력이 모두 고갈되었다.   


시련은 계속되었다. 투어가 끝난 후 머문 우유니 숙소가 피로와 고산증세로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을 완전히 부숴버리고 말았다. 냉기 가득한 방에 들어가 별별 시도 끝에 가스통이 들어있는 히터를 작동시켰지만 혹시 가스가 새거나 폭발할까 염려되어 화장실 외부 창문을 열고 방과 화장실 사이 문을 열어 놓았더니, 당연히 찬바람이 들어와서 추웠다. 게다가 참으로 건조했다.     


뜬 눈으로 아주 긴 밤을 보내고 일어나니, 손톱 옆 가시들이 곤두서 욱신거리고 목과 잇몸이 부어올라 열이 나며 기침까지 난다. 고산병과 감기의 콜라보가 시작되었다.    

 

한시라도 빨리 우유니를 탈출하자! 2,850미터 투피사에서 출발하여 5,000미터를 넘나들다 3,625미터 우유니에 머무르고 있다. 어서 낮은 지역으로 내려가야 한다.    


전날 예약해 놓은 야간 버스를 우여곡절 끝에 오전 버스로 바꾸고 8시간 30분 만에 수크레(Sucre)에 도착했다. 수크레도 2,810미터에 이르지만 볼리비아에서는 고도가 낮은 도시에 속한다.      


예쁜 백색 도시 수크레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호텔식당에서 신선한 과일이 풍성한 조식을 먹고 따뜻하고 청결한 룸에서 잠을 자니 황량했던 마음에 새싹 같은 생기 하나가 돋아난다. 하지만 위장장애와 식욕부진이 쉬이 회복되지 않아 수크레에 머무는 4일 동안 비실비실 무기력하게 침대와 한 몸이 된 채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여행은 계속되어야 하니, 다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수도, 평균 해발고도 3,600미터의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La Paz)로 간다. 라파스는 도시 내에서도 고도차가 900미터  넘게 난다고 한다. 경사진 골목을 몇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차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엄청난 규모의 재래시장과 인파, 골짜기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집들, 고지대와 저지대를 이어주는 대중교통수단 텔레페리코를 타고 내려다보는 도시 전경은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라파스만의 경이로운 풍경이다. 그중에 압권은 야경이다. 가파른 골짜기에 빼곡히 박혀있는 가난한 서민들의 집에서 밝힌 불빛들과 다운타운 지역의 조명들이 조화를 이루며 세상 독특하고 아름다운 도시의 야경을 만들어낸다. 하루를 마치고 저 불빛을 밝히며 둘러앉은 사람들의 저녁시간이 따뜻하기를...!    


라파스에서 2박 후, 4시간 거리에 있는 코파카바나(Copacabana)로 간다. 배가 다닐 수 있는 호수 중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티티카카(Titicaca) 호수가 있는 곳이다. 라파스보다 200여 미터 더 높은(3,812m) 코파카바나와 잘 지내기 위해 숙소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호수인지 바다인지 분간이 안 가는 넓고 투명한 티티카카호는 하나의 예술 작품 같은 숙소 라스올라스(Las Olas)와 함께 해서 더욱 아름다웠다. 라스올라스에서 바라보던 호수의 햇살과 노을, 별, 정원을 산책하는 야마 가족, 호스트 마틴 덕분에 3일 동안 토닥토닥 고산병과 잘 지냈다.     


이후, 고산 증세는 다음 여행지인 페루(Peru) 쿠스코(Cusco, 3,400미터)까지 따라붙었다가, 마침내 마추픽추(Machu Picchu, 2,430미터) 가는 중간 마을쯤에서 스르르 빠져나갔다.       


버스비도 흥정해야 하는 나라, 남미 최빈국인 볼리비아에 머물렀던 17일은 참으로 고된 날들이었다. 비포장 도로, 흙먼지, 매연, 고산증세로 여행 난이도가 높았다. 감당하느라 버거워서 계속 아팠지만, 가판대에 먹음직스럽게 튀겨진 치킨들이 수북이 쌓여있는 뽀요(Pollo, 닭고기) 천국, 짐이 잔뜩 든 알록달록한 보자기를 둘러매고 씩씩하게 걸어가던 원주민 아주머니들을 떠올리면 정답고 애틋한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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