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를 신경쓰면 둘째가 일이 생기고..
나 혼자만의 대인관계만으로도 버거운데 딸들의 인간관계까지 신경써줘야하는데 엄마인가보다.
그나마 내가 직장을 다니지 않아 주변 지인들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인간관계의 태평성대를 누리는 중이라 천만다행인듯싶다.
이제는 제법 스스로 할줄 아는게 많아져 육체적 힘듦이 끝났다고 착각하는 순간,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육아의 시작이란 생각이 든다.
중고등 자녀를 둔 친구들의 하소연들이 이제사 기억에 되살아나는 지점이다.
1학년 본격적인 학교생활이 시작됐지만, 코로나로 거의 학교에 가지 않았다.
다행히 지인들의 소개로 또래 학교친구들을 만들어 주고 동네 친구도 생기고..
순탄하게 2학년이 되었다. 이제는 본인이 알아서 친구도 사귀고 친구를 집에 데려오기도 한다.
항상 모범생 소리를 듣는 딸들 덕에 아이들에게 크게 신경쓸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첫째의 친구중에 조금은 특별한 친구가 있다. 요즘 세상에 드물게 형제가 여섯이라 한다. 언니와 오빠는 아빠랑 따로 산다고 했다.
아직은 어린 아이라 조금은 두서가 없어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남의 가정사를 함부로 묻는건 예의가 아닌듯해서 그냥 아이가 가끔씩 하는 이야기를 들을 뿐이다.
1학기땐 아이에게 핸드폰이 없었다.
그런데 부모님께 연락도 않고 우리집에 놀러오고 싶어했다. 일단은 공원에서 놀자하며 놀이터로 함께 갔다. 부모님은 회사에서 일을 하니 통화가 안될거고 언니들은 본인에게 관심이 없어 연락을 안해도 된다했다. 그래도 걱정하실까봐 엄마핸폰에 문자를 남겨드렸다. 놀이터에서 친구랑 30분만 놀다가겠노라고.
다음날에도 친구는 호정이와 놀겠다고 정문쪽이 아닌 후문으로 나왔다. 비도 오고 아이들이 원해서 우리집으로 데리고 왔다. 어머님께 문자는 남기고.
아이는 집에 돌아 가는 시간이며 우리집에 오는 날짜며 뭐든 본인이 정하고 싶어했다.
태권도를 빼먹고 더 놀고싶을땐 다른방에 들어가 엄마와 한참을 통화한후 더 놀다가도 된다고 했다. 아이 고집이 너무 세서 조금은 통제를 해야겠다 싶었다.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 등은 내가 정해 주었다.
아이는 친구들과 방에서 놀다가도 혼자 나와서 어른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거실에서 함께 대화하고 싶어했다. 아이는 종종 길거리에서도 지나가는 모르는 아줌마들에게도 아이가 몇개월이냐며 서스름없이 말을 걸기도 했다. 그 어른들은 나를 엄마로 오해하고 이상한 눈빛을 보내곤 했다.
헝크러진 단발 머리에 몇가닥 앞으로 튀어나와 눈을 가리고 있는 머리카락을 옆으로 단정히 해주고 싶지만 아이는 스킨십을 싫어했다.
2학기가 되고 나서 아이는 휴대폰이 생겼고, 자신은 하루 종일 봐도 제한이 없다고 했다. 그래도 어린 아이니 하루 한두시간만 보라고 조언은 해줬다. 아이는 우리집에 미리 연락없이 잠바도 안입고 가끔 올 때도 있었다. 집이 엄청 먼데도.
엄마에게 친구네 왔다고 전화드리라고 하면 한달 써야할 통화분수를 다 써서 내 전화를 빌려쓰곤 했다.
엄마가 회사원이 아닌 목사님이라고 한다. 어느 교회를 다니는지 묻자 딱히 교회가 없어보인다. 신앙생활을 하는 친구임은 분명하다. 엄마가 성경쓰기를 하게 하셨다고 했고, 월요일도 교회를 가자고 했다고도 했다. 언니들이 말을 듣지 않으니 막내인 본인에게 신앙생활을 같이하자셨다한다.
아이의 말이라 정확히 이해는 가지 않는다.
다만 가끔 내게 와 신앙이야기를 하곤 한다.
정확히 어느교단인지는 모르나 나와 같은 기독교인지라 대화는 통했다.
처음엔 매일 오고 싶어해서 당황스러웠지만, 다행히 자주 오진 않았고, 윗집 아랫집 시끄러울 정도로 큰소리로 웃어대고 소릴질렀지만, 그렇게도 재미있나 싶어 안쓰런 마음도 들었다. 무엇보다 먹성이 좋아 잘먹고 어른들과도 스스럼없이 대화도 잘해 사랑스런 면도 있는 아이다. 다만 상대방의 입장따위는 생각하지 못하고 어른을 이겨먹을 정도로 고집이 너무 세다는게 조금 걱정스러웠다.
호정이랑 또다른 친구인 옆집 빌라의 참한 같은반 친구와 그 아이 이렇게 셋이 자주 놀러왔고 친한 편이다.
아직은 어린아이라 보기엔 언니와 휴대폰을 주고받아 얼굴에 멍자국이 있을 정도로 깡도 있는 아이고, 같은반 친구들을 단톡방으로 초대할 만큼 성격도 괘활하고 사교적이다.
무엇보다 학교에서 호정이와 두번째로 친한 친구이기도 하다.
옆집 빌라 친구 엄마는 그 아이를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기는 눈치이다.
이번 주말엔 심하진 않지만 온가족이 감기가 걸려 모두 함께 집에서 쉬었다.
가뜩이나 첫눈에 대설주의보까지 떠서 놀이터를 안나갈수는 없었다. 토요일에 이어 오늘 일요일까지 집앞을 두차례 나갔다 왔다.
3시쯤 이제부터는 집에서 편히 쉬어야겠다고 생각할때쯤 어제에 이어 또 그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토요일인 어제는 자유롭게 핸폰을 보게 해줬고, 저녁 7시 쯤에나 핸폰이 가능하다는 말에 아이는 저녁 7시에 정확히 전화를 했다. 저녁을 먹고 동생과 놀고 싶던 호정이는 친구와의 약속이라 핸드폰 게임을 했다. 요즘아이들은 코로나로 못만나니 핸폰으로 통화를 하면서 함께 게임을 한다.
10분정도 지났을까 아빠가 통화는 그만하고 같이 게임만 하라며 전화를 끊게 했다.
기왕 허락 할거면 재미있게 두지 싶었다.
누가 했든 통화요금은 나올것이고 적당히 통화해야한단 남편의 말에 나도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오늘 한가로이 쉼을 즐기고 있는데 또 전화가 왔다. 나는 왠지 마음이 불안했다.
전화기 너머로 친구의 목소리가 다 들렸다.
거절을 잘 못하는 호정이가 아빠랑 두번이나 나갔다와서 오늘은 안되겠다며 버버대며 거절했다. 그냥 순순히 끊을 아이가 아니었다. 다음에 놀자는 호정이의 말에 그럼 언제 노냐고 물었다. 학교에서 보자하니 자가격리중이라 개학하는 날에나 학교에 온다고 했다. 호정이가 버벅대며 제대로 답변을 못하자 그 아이는 내일 월요일에 놀자고 했다. 아직 자가격리중이라 그건 안될것 같았다. 나는 작게 나중에 학교에서 보자고해 라고 했다. 아이는 역시나 자기는 개학때에라야 학교에가니 언제 놀지를 말하라고 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호정아 그만 끊어 라고 했다. 호정이가 영희야 그만 끊어야겠어 라고 말하자 상대에게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호정이가 끊을께 라고 말하고 상대의 인사도 못듣고 끊어버렸다.
나는 영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아이가 잘 들어갔는지 묻고 답하던 짪은 대화의 카톡에 미안하다고 사과의 글을 남기고 싶었다
일요일은 가족들과 쉬는 날이라 이모가 통화를 끊게했다고 미안하다고 다음에 학교에서 놀거나 또 놀러오라는 등의 인사말을. 위로의 말을 너무나 하고싶었다.
나는 내방으로 들어와 잘못에 대한 회개기도와 말씀친구에게 기도 요청 등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내 힘으로 어쩌는 것보다 내가 믿는 하나님께 그 아이와 그 가정을 위한 기도를 해주고 싶었고 무엇보다 오늘 나와 호정이로 인해 마음에 상처가 났을까봐 그 마음을 위로해 주시기를 기도했다.
믿음이 약한 나는 기도를 하고도 마음 한구석이 계속 신경쓰였다. 카톡으로라도 남길걸 그랬다는 미련이 계속 남았다.
네가 싫어서가 아니라 각자의 일정이 있어서라고 전해주고 싶었다..
딸의 휴대폰에 함께 하는 게임 채팅창에 그 아이가 남긴 메모
너 왜 나 무시해!
라는 반복적인 네번의 글귀가 계속 신경이 씌였던 걸까.
우리 아이는 여느 가정처럼 하루에 핸드폰을 보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그리고 게임 활용법을 그다지 잘 알지 못한다. 거기다 엄마 핸드폰에 깔려 있는 게임이다 보니 당연히 그 채팅글을 못보았을게다. 오늘 내가 확인한것조차도.
평범하지 않은? 야무지지 못한? 내 성격탓에 나는 늘 손해 보는 쪽을 택하는 편이다. 내가 손해를 본다는 것은 상대가 득을 본다는 것이고 그러면 상대가 기쁠것이고 나는 그러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것이 나의 천성이 돼버린것 같다.
그래서 아까 같은 경우도 그 아이 마음을 달래줬어야 마음이 풀린다.
그렇지만 이건 내 인간관계가 아니라 나의 딸아이 문제다. 그래서 평소처럼 내 맘 편한대로 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두었다.
인사나 답을 듣지 않고 끊은건 내 딸아이 잘못이고, 옆에서 끊으라고 한 나역시 잘못을 했다.
다만 가족들이 모두 쉬는 일요일전화를 해서 상대방에 대한 베려없이 언제놀건지를 강요하고 그만 끊자는대도 끊지 않고 계속 있은 그 아이도 잘못이었기 때문에 달래주지 않은것같다.
그르쳐주고 싶었던걸까. 그 아이는 내내 마음이 안좋았을텐데..
주말 예능을 보며 웃고 있다가 다시 그 아이 생각이 나서 더이상 미안한 마음에 웃을수가 없었다.
과거를 돌아보면 도움이 필요한 친구를 다른 아이들은 아예 가까이 하지 않았다. 헌데 나는 가까이 했다. 그러고서는 끝까지 함께 해주지는 못했다. 그것이 나의 한계였다.
마음한견에 오늘 그 아이가 받았을 마음의 상처가 그리고 그것을 싸매주지 않은 나의 미안함 등이 뒤섞여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숙제로 남겨질 우리 호정이의 몫이 걱정되기도 했다.
어디까지가 엄마의 역할이고 또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엄마라는 직업은 어려운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