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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망 Jul 03. 2022

소설 - 루&리의 평범한 가정 (2화)

엄마의 생일

다음날 엄마의 생일모임을 가려했는데 밤에 첫째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가 주말농장을 하시는 밭에 가셨다가 삼촌들과 약주를 한잔하시고, 감자며 매실이며 가방에 잔득 짊어지고는 버스정류장 앞에서 노상방뇨를 하시고 뒤돌아 서시다가 넘어지셔서 고관절 골절이 되어 응급실에 가셨다는 전화였다.

어차피 코로나로 면회도 안되니 일단 출발하지 말고 소식을 기다리라 했다.


전날 코에 생긴 점이 빼도 빼도 계속 생긴다며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권유했다가 받아본 결과에서 피부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하루 종일 울기만 하셨던 엄마는

그덕분?에 우울증은 온데간데 없이 더급한 아빠의 상황에 다시 씩씩해지셔서 정신없이 바빠 보이셨다.


그러게 평소에 매일 집에만 계시지 마시고, 교회를 가시든 봉사활동좀 하는 등 사회생활좀 하시라 했다가, 본인 나이가 몇인데 자신 몸 거동도 못하는데 무슨 봉사냐며 나를 엄청 나무라셨던 엄마였다.

엄마는 원래부터 나랑 안맞았다.

딸이고, 부모니까 관계가 유지되어 온 참 다른 분이다.

A형 엄마는 B형 아빠와 온종일 사사건건 다투시며 사셨다. 크게 싸우거나 이혼을 생각할 그런분들은 아니지만, 자식들인 우리가 봐도 달라도 너무 다른 분들이셨고, 첫째언니는 엄마를, 나는 아빠를 많이 닮았다.


최근들어 안좋은 일이 계속 생기냐는 엄마의 걱정과 달리,

나는 오히려 그래도 가장 흔한 피부암의 일종인 것과 아빠의 사고 덕에 우울증의 덫에서 나온 엄마가 오히려 다행이고 감사했다.


다만 연세가 많은분들이 고관절수술을 하실경우 꼼짝 없이 한두달을 누워만 계셔야 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합병증이 올수도있고 재활치료를 해야하는 등 고생도 많이하고 위험할수도 있다는 말에 조금 걱정이 되었다.


수술후 한달반을 꼼짝없이 누워만 있어야해서,

그냥 집에서 모실건지 재활병원에서 한달반을 계실건지 의논을 해야했다.


수술전 이틀은 엄마가 보호자였지만, 연세가 워낙 많아 아이들도 다 큰 둘째 언니가 알바를 관두고 간병인 역할을 하기로 했다.

그동안 형제들이 모아둔 회비로 1차 입원비 등은 내기로 했고, 형편이 어려운 둘째언니에겐 간병인 쓸 비용을 언니에게 주기로 했다.


몸도 아프시겠지만, 자식에게 대소변을 맡겨야할 아빠의 난감함 그리고 다른것도 아니고 조심하지 못한 실수로 게다가 노상방뇨라는 부끄러운 타이틀로 누워계실 아빠의 민망함과 미안한 마음등 그런것들이 더 힘드실까 걱정되었다.

목소리 큰 엄마에 비해 고집은 세지만 순한 아빠의 발언권은 미비해서 대소사에 아빠의 의견이나 입장은 많이 반영되지 않았다.

이번에도 아빠의 입장을 고려해 그냥 간병인을 쓰게 해드리고 싶었지만, 목소리 큰 첫째 언니와 오빠는 아빠 입장은 크게 고려치 않아 보였다.


어찌됐든, 수술후 절차를 정해야 했고, 한달반을 누워만 계실거면 엄마는 병원비를 아낄겸 집에서 엄마가 보시겠다 하셨다.


그래도 서울에서 월세받아 생활하는 단독주택을 보유하신 분들이라 생활비 한번을 안드리고 무관심 했는데, 이제 보니 아빠의 통장에는 잔고가 백만원밖에 없었다.

심장수술이력에 당뇨에 고혈압에 대형병원 정기 검진과 약을 타다 쓰시느라 빠듯하셨던 모양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엄마의 치아가 하나 둘 고장이 나면서 아껴 두셨던 비상금은 모두 쓰고 없던 터였다.


엄마 역시 내 예상과는 다르게 형편이 넉넉지 못하셨다.

황금보다 아끼시던 아랫집 월세 보증금을 깨뜨려 400만원을 병원비에 쓰라고 내놓으셨다.

재활치료까지 가면 돈이 더 들터이고 그러면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게 될까봐

그래서 집에서 아빠를 간호 하겠다 하셨던거다.


나도 나이들면 저분들처럼 당장 내몸이 고달픈데도 자식들 부담안주려고 마음이 그렇게 될까 싶다.

모처럼 엄마 생일에 한껏 목소리를 내어 야외 캠핑겸 바베큐장에서 가족들과 소중한 추억을 만들자고 했던 내 계획을 한껏 기다려 왔는데, 못하게 됐다.

지난달 부모님 댁에 갔을때 왜 앞의 나무가 죽어 버섯이 피었느냐고 묻자,

엄마가 집을 가리고 있는 저 나무가 보기 싫다 계속 말씀하셔서 아빠가 일부러 나무에 약을 주어 죽게 하셨다는 얘기를 듣고 내심 마음이 안좋았는데

그러고나서 안좋은 일이 생기니 더욱 마음이 찝찝했다.

종종 사람들은 자신의 편의를 위해 동식물을 이용하거나 다스리는 경향이 있기에.

나는 부모님을 대신해 내가 믿는 신께 회개했고,두분이 그래도 큰병이 아니고 그만한게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몰랐다.


우애좋은 시댁 식구들과 달리 부모님 닮아 서로 연락도 않고 지내는 형제들이 이번일을 계기로 며칠째 계속 엄마, 아빠와 그리고 형제들 서로간에 계속 단톡으로 소식 주고 받고, 전화하고, 그동안 각자 살기 바빠 무소식이 희소식이던 우리 집에도 작은 변화가 일었다.


삶이란게 부유하다고만 행복한 것도 아니고, 안아프고 무탈하기만 한것 또한 인생이 아닌것 같고, 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달고 쓰고의 반복되는 여정이 삶의 과정이 아닌가 싶다.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을 맞닥드리게 될지 모르나, 마음가짐, 생각을 잘지키고 잘 이겨내는것 그것 또한 아이들에게 알려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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