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장애 항우울제 부작용 1. 멀미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은 지 한 달이 지난 무렵 생생하게 기억나는 컬러꿈의 횟수와 심계항진이 확실히 줄었다. 그런데 딱 하루, 몸이 너무 피곤했던 나머지 약을 먹지 않고 잠에 들었던 날 연속으로 5번의 악몽을 꿨다.
나는 일곱 살 아들에게 운전대를 넘겨주고 차에서 내렸고, 차는 내리막길로 미끄러지듯 질주했다. 첫 악몽을 꾸고 깼을 때 심계항진이 심하게 왔고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선잠에 들락날락하며 4번의 악몽을 꿨다. 완전히 깬 건 새벽 2시였다. 놀라서 깬 남편이 가져다준 약을 먹었다. 그날 나는 '정말 약효가 있긴 하는구나'라는 생각과 더불어 '나는 이제 약 없으면 잠을 못 자는 건가'라는 절망감을 느꼈다.
신경안정제를 증량한 이후로 수면은 조금 개선되었으나 도리어 낮 시간 동안 감정과 충동성 조절에 어려움을 겪었다. 평소의 나는 대부분 침체된 상태인데, 약을 먹고 나서 도리어 감정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았다. 가만히 앉아있다가도 화가 욱- 하고 올라오고, 작은 일에도 신경이 예민해져 나도 모르게 직장 동료에게 까칠하게 대했다. 집중력도 흐려져 부주의함으로 놓치는 게 많고, 기억력에도 문제가 생겼다.
다음 진료에서 그간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의사는 내 증상에 대해 두 가지 가설을 내놓았다.
가설 1. 꿈을 통해 해소되지 못한 감정 문제
인간은 자는 동안 모두 꿈을 꾸면서 감정을 해소하는데, 렘수면 상태에서 뇌가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전달하는 과정을 누락하기 때문에 꿈을 꾼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나는 꿈을 꾸는 양상이 다르다.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아 첫 번째 꿈을 꾸고, 꿈의 지속시간이 굉장히 길다. 그리고 악몽의 특성상 자극이 강렬하고 내용이 기괴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장기기억으로 보내지는 신호가 강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약을 먹으면서 실제로 꿈의 횟수도 줄어들고 수면의 질도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때문에 이 이유는 아닌 것 같다고 하셨다.
가설 2. 신경안정제
신경안정제는 신경을 느슨하게 만들어주는 동시에 조절의 끈도 느슨하게 만든다고 한다. 때문에 감정을 억누르고 참는 사람일수록 평소에 열심히 긴장상태로 조절해 놨던 그 끈이 풀어져서 억압된 감정들이 충동적으로 표출된다는 것.
의사는 하지만 신경안정제를 줄이는 것은 도리어 안 좋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약을 줄였을 때의 수면에서 부작용을 경험한 에피소드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대신 기분을 조절할 수 있는 항우울제를 추가했다. 항우울제는 약효가 드는 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20일 동안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문제는 항우울제 부작용. 약을 먹고 난 다음날 출렁거리는 바다 위의 배에서 멀미를 하는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어서 병원에 전화를 했다. 일단 처방받은 항우울제를 반으로 쪼개고, 약국에서 위장약을 사서 함께 복용하면서 경과를 지켜보자고 한다. 담당 간호사는 그 사이에 또 너무 불편감이 있으면 전화 달라고 하셨다.
오후에 회사에 출근을 했는데도 몸에 기운이 다 빠져서 기력이 없었다. 입이 바싹 마르고, 속은 울렁거리고. 무기력하고. 화나는 것 때문에 처방받은 약인데 아예 화 낼 기력을 없애는 건가. 나는 주로 위장관계에 부작용이 컸다. 그리고 식욕부진. 아무것도 먹기 싫음. 게다가 무기력. 그 주말은 거의 좀비처럼 지냈다. 움직이기도 쉽지 않을 만큼 전신기력이 쇠하였는데 아이들 봐야 해서 정말 노력해서 하루를 살았다. 며칠 동안 화나는 감정은 거의 못 느꼈다. 약효인가.
그다음 주는 온종일 기운이 없고, 별 감정도 없는데 문제는 계속 불안했다. 사소한 일 하나하나가 다 불안한데, 기력은 없으니 아무것도 못하면서 불안한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사무실에 앉아서 열심히 일을 하지만 사장이 나를 감시하고 있는 것만 같아 불안하고 그러다 보니 괜히 무리해서 더 일을 하게 되고, 버스에서 기사님이 다른 손님에게 큰소리치는 상황에서 나한테 그런 것도 아닌데 심장이 계속 쿵쾅거리고 과호흡이 왔다.
항우울제 복용 후 처음 1-2주는 괜찮았는데 마지막 3주째 때 지금 당장 신변 안전에 대한 불안부터 미래에 대한 불안까지. 불안함이 컸다. 악몽도 다시 꿨다. 진료실에서 가만히 내 얘기를 들은 의사가 말했다.
"저번에는 화가 올라왔는데, 이번에는 불안이 올라왔네요"
이번 증상은 약물 때문은 아닌 것 같고 기저에 깔린 불안이 올라온 것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처음 호소했던 악몽도 '불안'에 관련된 내용이었고, 심리검사에서도 불안지수가 높았으며, 이전 병원 기록에도 불안장애가 명시되어 있다.
의사는 꼼꼼한 성격일수록 자꾸 자신의 증상을 '확인'하게 되는데 그것이 불안을 증폭시킨다고 이야기했다. 예를 들면 내가 심장이 잘 뛰고 있나 확인하려는 순간부터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뛰게 되고, 내가 지금 숨을 잘 쉬고 있나 확인하려는 순간부터 과호흡이 시작되는 경우라고 한다. 나는 내 증상을 꼼꼼하게 기억하고 말하는 편인데, 그것이 스스로 증상을 계속 확인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의사는 나의 '불안'이 분산되어 있다고 말한다. 불안을 포커싱하는 훈련이 필요하고, 증상을 확인하려는 강박을 내려놓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한다. 지금 불안이 증폭된다 해서 신경안정제를 더 처방하면 도리어 쳐지는 현상을 확인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고, 약물로 인한 불안이 아니기 때문에 약은 그대로 3주 치를 처방하면서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신경안정제, 항우울제, 항전간제. 불안, 결국 원인은 불안. 이 불안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