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일주일, 약 부작용 시험단계
첫 주에는 지극히 소량의 신경안정제와 수면제를 처방받았다. 이전 정신과 기록에 약물 부작용 증세를 겪었다고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의사는 한 주간은 약효는 없을 것이고 단지 부작용이 얼마나 되는지, 증량이 가능한 것인지 시험해 보는 단계라고 했다. 당장 시급하게 가라앉혀야 할 악몽, 심계항진, 발작에 도움이 되는 약을 먹어보기로 했다.
약을 처음 복용한 날, 평소대로 몇 번 뒤척이다 잠이 들었지만 악몽은 꾸지 않았다. 대신 아주 정신없는 꿈을 꾸었다. 당시 나는 작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꿈에 내가 바쁜 매장에서 손님들을 상대하느라 멘붕상태에 빠지는 꿈을 꿨다. 낯선 남자와 불륜을 저지르면서 혼자 죄책감을 느끼는 꿈, 옛 직장에서 새로 온 신입이 일을 너무 잘해서 비교당하는 꿈 등 정신없는 꿈들을 꾸다가 잠에서 깼는데 새벽 5시였다. 아주아주 길게 잔 것이다! 보통 밤 12시 30분, 2시 30분에 깨는데 기적적인 일, 자고 일어나서 심장이 가파르게 두근거리는 증상도 없었다.
그런데 이튿날부터는 다시 악몽을 꿨다. 아기 젖병 소독 하느라 물을 팔팔 끓였는데 그 물에 남편이 손을 집어넣고 화상을 당하는 꿈, 전쟁터에서 적군의 총을 피해 땅을 파서 숨고 뒤주에도 숨다가 발각돼서 죽기 직전에 깬 꿈, 뱀 나오는 꿈 등 악몽을 꿨고 심계항진이 왔다. 나아진 것은 꿈에서 깨는 시간이 딜레이 되었다는 것뿐이었다.
두 번째 진료에서 의사는 원래 약물은 처음 먹은 날에는 효과가 가장 좋지만 계속 먹을수록 몸도 약에 적응을 해서 약효가 일어나기 전에 대사를 시켜버린다고 설명을 했다. 빨리 소화시킨다는 것이다. 게다가 첫 주는 약효를 바란 것이 아닌 약의 부작용이 있는지 확인하는 단계였기 때문에 너무 소량의 약이라 약효가 거의 없는 게 맞다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시켜 주었다.
의사는 자신이 약물로 인해 바라는 목표의 최대치는 꿈꾸는 횟수를 조금 줄이는 것, 꿈에서 깼을 때 다시 빨리 잠에 들 수 있게 하는 것 까지라고 한다. 그 이상의 효과를 볼 수는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말에 절망이나 체념보다는 안심이 되었다. 정확한 목표설정이 도리어 내겐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그 이외의 것은 심리상담이든 정신분석이든 따로 치료를 받아야 할 문제다.
약을 두배로 증량해 2주간의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진료를 다 보고 나서 병원에서 집까지 택시를 타지 않고 일부러 뛰어왔다. 날이 엄청 추워서 차디찬 물속을 뚫고 가는 느낌이었지만 침묵의 압력을 뚫고 가는 내 몸뚱이가 대견스러웠다. 달리고 또 달렸다. '기분이 좋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생각하며 낯선 감정을 데리고 계속 달렸다. 개나리 꽃이 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