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보잡 매거진 에디터의 성장기 10화
2022년 7월
간곡하게 부탁하는데 풀리지 않는 마음 속 매듭들에 조급해하지 말고 그 의문들을 자물쇠가 채워진 방이나 외국어로 쓰인 책처럼 사랑하도록 해보게. 당장 정답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우왕좌왕하지 말게. 답을 얻었댔자 몸으로 살아낼 수 없기 때문일세.중요한 건 삶으로 드러내는 일이라네. 지금은 의문으로 살게. 언젠가 미래의 어느 시점이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해답으로 통하는 길을 살아내고 있을 테니까.
- 라이너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책임감이 어깨를 짓누를 때면 10년 전, 당찬 신입기자가 호기롭게 쓴 기사를 딸기밭(빨간펜 수정)으로 만드시던 편집국장님이 생각난다. 기사 하나 붙들고 땀 뻘뻘 흘리는 애송이 신입 때문에 덩달아 늦은 퇴근 하시던 편집국장님 생각.
평소에는 무뚝뚝하고 데스크에서는 날카로웠지만, 불공정한 대우 앞에서는 든든하게 방패막이가 되어주셨던 국장님. 쉽지 않았던 나날들 속에 그 안개속을 먼저 거닐었던 사람.
2014년은 참 많은 아픔이 있던 시기였다.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사회적으로도 많은 재난과 참사가 덮쳐왔다. 쏟아지는 한숨과, 닭똥같이 떨어지는 눈물 삼켜내고 이를 앙다물고 써내려가도, 억울한 세상살이 균열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하는 기사를 만지작거리며 하루를 멀다하고 빈잔만 껄덕이던 시절이었다.
좀 더 현장과 가까이 있고 싶다는 치기어린 마음으로 활동가로 살겠다며 사직서를 냈던 여름날에도 말 없이 빈 잔을 채워주셨던 분. 결국 시민단체로 이직한 후 반년이 지난 어느 눈 내리던 밤. 종로 찻집에서 겨울이 지나고 새순 돋는 계절이 돌아오거든, 얼른 언론판으로 다시 건너오라는 말만 되풀이하시고는 헤어지는 길, 너는 버지니아 울프같은 사람이라며 아주 오랜 뒤에 우린 세상의 복잡한 계산을 극복할 수 있을거라고 위안과 격려를 주셨던 그 마음이 오래도록 가슴 속 서랍장에 고이 남아있다.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여전히 세상에는 고통과 아픔, 불평등과 불합리한 일들이 존재하지만 나는 그동안 참 많이도 변했다. 세상에 두려운 것이 참 많아졌고, 지켜야할 것도 많아졌다. 안전하지 않은 세상에서 내 안위를 걱정하느라 옴짝달싹 못하는 소극적인 존재가 되어버렸다. 아프고 처참해도. 애써 못본 척 하는 일들에 대한 죄책감은 밤이 되면 악몽으로 찾아와 나를 짓누른다.
운 좋게 다시 기자로 일하게 되었고, 편집장이라는 책임도 지게 되었다. 사수 없는 기자가 이렇게 외로운 거였나. 누군가를 이끌어갈 리더십도 없는데 짐이 무겁다. 이제는 탐사보도나 사회고발기사는 쓰지 않아도 되는 분야여서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끔씩, 이 자리가 내 자리가 맞는가 자꾸 혼란스럽다. 물론 지금 맡고 있는 동안은 최선을 다하겠지만, 여기에 안주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 옛날 편집국장님의 자리가 참 외로운 자리였겠다는 생각도 든다. 여전히 안개에 쌓인 것 같은 앞으로의 삶이 답답하고, 무력해질 때가 있지만 이제는 누군가의 격려 없이도 오롯이 나아가야 할 때다. 잘 모를 때면 겸손하게 질문하고, 재차 묻고 물으며 조금씩 보이는 길을 따라 계속 걸으면 될 것이다. 의문으로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