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보잡 매거진 에디터의 성장기 마지막화
2022. 9월
우리 가족의 새 출발을 앞두고 결정했던 퇴사가 회사 사정으로 생각했던 시기보다 조금 앞당겨졌다. 미처 발행하지 못한 인터뷰 기사들도 있는데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업무를 정리하고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매건진을 폐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신의 기사를 기다리고 있을 인터뷰이들에게 예의를 지켜야 해서 발행하지 못한 인터뷰 기사는 마감일을 조금 미뤄 다른 채널을 통해 발행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아이를 낳고 경력단절여성으로 살아간 시간이 길었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연극치료 공부를 하고 자격증도 따고, 좀 더 전문성을 갖추고 싶어 대학원 상담심리학과에 입학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천으로 이사오게되면서 대학원은 1학차만 수료한 채 2년간 휴학연장을 해왔다.
김천은 공단이 있는 곳이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가 어려웠다. 회계를 배운 적도 없고, 경리 일을 해본적도 없어서 막연한 두려움이 컸다. 그래도 카페 알바는 대학생때 늘 했던 일이어서 괜찮겠다 싶었다. 작은 카페에서 주 2일 일하다가 재정적인 부분을 좀 더 채우기 위해 스타벅스로 이직했지만 열흘도 근무하지 못하고 산재로 퇴사했다.
난 이제 정말 노동시장에서 쓸모가 없는 사람인가 자괴감이 몰려왔을 때 기적처럼 매거진 에디터를 구한다는 입사공고를 발견했다. '그래 난 원래 기자였지. 글 쓰는 사람이었지' 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렇게 다시 취재를 하고, 글을 쓰는 일로 밥벌이를 하게되었다.
어쩌다 매거진 창립멤버가 되었고, 어쩌다 편집장이라는 직책도 맡게 되면서 회사 생활의 무게감이 어깨를 짓누를 때도 많았다. 무엇보다 임원진을 포함해서 기자 경력이 있는 사람이 나 뿐이어서(지금 생각해보면 경험없이 창립한 대표님이 대단해보이기도 한다.) 초반 홈페이지 작업부터 매거진의 방향과 기사의 틀, 취재 메뉴얼까지 전부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 후배 기자 교육까지.
어떻게 보면 맨 땅에 헤딩하듯 시작한 매거진은 초반에 일간 언론사로 방향을 바꾸면서 일이 더 많아졌다. 취재 양도 늘어났다. 그래도 열심히 했다. 아무도 찾지 않던 워드프레스 홈페이지가 6달 만에 월 1만뷰를 찍었다.
내년 초에 강원도로 떠날 준비를 하기 위해 11월에 퇴사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린 게 2주 전이다. 중심인력이 없어져서 운영이 불가하다는 판단으로 공동대표단은 갑작스레 폐간을 결정했고, 나는 어제 퇴사를 했다. 갑작스러운 결정이어서 황당하기도 하고 무언가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 같아 허무하기도 했지만 남은 동료들의 거취가 제일 걱정되었다. 다행이 자사 제품 마케팅 팀으로 넘어가는 것을 상호 합의해서 계속 회사에 머물게 되었는데, 기자 생활에 점점 재미를 붙이고 있던 신입 기자분께 제일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제 송별회를 했다. 헤어짐의 아쉬움, 새출발을 응원하는 마음을 가득담은 편지들과 선물을 집에와서 하나하나 열어봤다. 은유 작가님은 살아가는 것 많으로도 다른 사람의 해방에 기여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하셨는데, 나는 함께 일한 동료들의 해방에 기여한 사람인가 조금은 뼈아프게 돌아보게 된다. 먼 훗날 문득 나라는 사람을 기억할 때 "아,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라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것 같다.
편지 내용 중 그 중 가장 눈에 들어온 말은 "편집장님이 앞으로 쓰시는 글에 좋은 날개가 달렸으면 좋겠어요. 계속 팬심으로 편집장님 글 찾아볼게요!" 였다.
우여곡절 많았던 회사생활이었지만 1년간 다시 취재메뉴얼을 공부하고, 사람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기사를 쓰고, 세상 돌아가는 일을 다시 현미경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축복과도 같은 일들이었다. 비록 회사는 떠나지만, 그리고 그동안의 취재 결과들이 사라질지도 모르지만 나는 앞으로도 계속 취재하고 글 쓰는 일을 잘 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당탕탕 이름만 편집장같은 편집장이었는데, 작은 바람은 나도 사수가 있었으면 그래서 조금 더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다시 다른 언론사에 들어갈 생각은 없고 당분간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열심히 글 쓰다 좋은 기회에 좋은 인터뷰 매거진을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
취재하고 글 쓰는 사람 이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고 잘 살아갈 수 있기를. 글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