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텃밭도 요가도 아닌 '영어'에 돈 쓰기

난생처음 영어 과외를 받기로 했다.

by 문슬아

수능 영어 2등급. 나쁘지 않은 성적.

그런데 수능이 끝난 이후 그동안 외워 온 모든 단어가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영어에 대한 흥미는 애초에 없었지만 시험이 끝나고 나니 더더욱 떨쳐내고 싶었던 과목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신입생이면 꼭 들어야 하는 대학영어를 듣고 난 이후 영어 수업은 졸업 때까지 신청한 적이 없다. 말 그대로 영어를 손에서 놓아버린 것이다.


취업을 위한 토익을 본 적도 없다. 취업난이 심한 시대에 이런 용기도 참 가상하다. 그 상태로 막상 사회에 나가보니 생각보다 영어를 쓸 일이 없어서 일상에 별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물론 대학원 들어갈 때, 이직할 때 영어실력이 필요하긴 했는데, 나도 모르게 몸에 남아있던 수능영어 덕택으로 무난하게 과정을 지나올 수 있었다.

아이 둘을 보내고, 영어공부하기

그런데 이제 와서, 이 시골에서 갑자기 영어에 돈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느린이 여행학교 교사를 할 때부터 조금씩 영어를 향한 갈망을 키워왔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는 느린을 보며 나도 언젠가 이 독박육아에서 벗어나 해외여행을 가게 되었을 때 자유롭게 소통하고, 친구도 사귀고 싶다는 단순한 욕망이 생겼다.


고성에 와서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적응시키고 나니 이제 나는 여기서 무얼 할 수 있을까, 뭘 하면서 살아야 하나 고민이 점점 깊어졌다. 나는 이전대로 취재를 하고 글을 쓸 것이다. 물론 프리랜서로. 돈벌이는 많이 되지는 않겠지만 조금씩 내 활동의 영역을 넓혀가고 싶다. 그리고 이 지역에 외국인 유학생, 이주노동자들이 많은데 그들의 이야기도 궁금하고,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있다.


숨고에서 이 지역 영어 선생님들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지금 나의 영어선생님 Bella를 만났다. 참 신기한 인연인 게, 내가 이사 오고 얼마 안돼서 스타벅스에 잠깐 혼자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내 옆옆 테이블에서 영어 수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내 시선이 의식되지 않을 정도로만 지켜보았는데 그때 선생님의 얼굴이 기억 저편에 남아있었는데 알고 보니 Bella였던 것.


매주 한 번씩 Bella가 우리 집에 온다. 요즘 그 시간이 기다려진다. 1시간 반동안 영어로만 대화하는 시간. 물론 나는 더듬더듬 말을 이어가느라 시간이 걸리는데 차분히 기다려주고, 들어주고, 또 코칭해 주는 Bella 덕분에 시간이 금방 흘러간다.


틀밭도 어서 만들어야 하고, 운동도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영어가 재밌어져서 다른 것들을 자꾸 미루게 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서로에게 놀림거리가 되어주는 시골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