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사고 10년의 운전자. 무사고 = 무운전이다. 물론 면허를 따고 처음 1년은 김포에서 동대문까지 매일 출퇴근 운전을 하던 나였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운전을 손에서 놓았다. 하지만 시골에 오니 운전은 필수. 운전 못하면 고립이다.
8년 만에 다시 운전대를 잡으려니 두려웠다. 밤마다 엑셀과 브레이크를 헷갈려 사고가 나는 꿈을 꾸었다. 김천에서부터 남편이 조수석에 타고 내 운전연수를 도맡아 주었다. 그러다 지난주 한 밤에 너무 맥주가 마시고 싶었다. 우리 집에서 1Km도 채 안 되는 곳에 작은 리조트의 편의점이 있다. 나는 갑자기 혼자서 그곳에 다녀올 수 있겠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나 홀로, 그것도 밤에 운전대를 잡았다.
어두컴컴한 길을 30km의 속도로 천천히 운전해서 갔다. 유리창에 먼지가 껴 있어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운전 중에 와이퍼 워셔액 뿌리고 자시고 하는 게 나에겐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냥 흐릿한 채로 갔다. 리조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한숨을 돌린 후 와이퍼를 작동시켜 유리를 닦았다. 맥주를 사러 가는 길에 혹시라도 우리 차를 누가 가져가지는 않을까 걱정에 사이드 브레이크까지 걸어놓고 문까지 잠그고 나섰다.
맥주 5캔과 안주로 먹을 콘칩을 사서 조수석에 올려놓고 깨끗한 시야가 확보된 운전자석에 앉았다. 다시 집으로 출발. 그런데 돌아가는 길 두 갈래 길에서 어느 쪽이 우리 집인지 갑자기 가물가물했다. 나는 올 때와 갈 때의 길이 다른 어마무시한 길치란 사실을 잊고 있었네. 한참을 달렸는데도 집이 안 나왔다.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저 멀리 골프장 간판이 번쩍였다. 아뿔싸. 너무 멀리 왔구나. 그래도 괜찮아, 나는 어른이고 무사고 10년 운전 자니까. 애써 태연하게 차를 돌려 길을 되돌아갔고, 원래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던 골목에서 이번엔 제대로 들어갔다.
그동안 남편은 내가 한참 동안 돌아오지 않아 노심초사 중이었다. 집 마당으로 진입하니 버선발로 마중 나와있다. 내 얘기를 들은 남편은 나의 길치감에 한번 더 놀라고. 그래도 나는 혼자서 밤길을 운전하고 돌아왔다는 뿌듯함 덕분에 맥주가 참 맛있게도 꿀꺽꿀꺽 넘어갔다. 남편에게 놀림감을 하나 준 셈이지만.
하지만 다음날 나도 놀림감을 하나 얻었다. 오전에 남편이 자신만만하게 인터폰을 직접 설치하는데 너무 자신감이 넘쳤는지 설명서를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 유튜브 설명에만 의지해서 한 시간 넘게 설치를 했는데 작동을 안 한다. 난 설명서를 차근차근 읽어보았다. 알고 보니 실내 인터폰 선을 애꿎은 다른 선에 연결해 놓은 것이다.
남편은 그 사실도 모르고 현관문 밖 인터폰을 뜯으려고 했다. 급히 말리고 일을 제대로 잡았다. 머쓱해하는 남편. 우당탕탕 초보 시골러들에게는 서로에게 자꾸 놀림감이 생긴다. 그 덕에 아주 무료하진 않다.
이렇게 일주일이 흐르고 지금 나는 속초 시내까지 아이를 데리고 혼자서 병원에도 갈 수 있게 되었고, 남편은 집 안 곳곳에 허물어진 곳을 '말끔히'는 아니지만 그래도 쓸 수 있게 고쳐놓을 수 있는 능력을 겟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