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어느 순간 그 지점을 지날 때 느끼는 그 마음.
작년에 '여행의 이유'를 아주 재미있게 봤던 기억에 망설임 없이 주문했다. 역시 재미있었다. 오래전에 알았던 동네 형을 만나서 그간의 소식과 요즘 생각을 전해들은 느낌이었다.
막상 독후감을 쓰려니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읽은지 오래 되었지만 뚜렷하게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작가가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매우 담백하고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서술하는 부분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 알게된 사실과 어렸을적 그리고 커서 경험했던 엄마의 존재와 그에 대한 본인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서 너무 담담하면서도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오랜 친구나 아는 형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이야기가 진솔한만큼 내 마음도 움직였고, 나도 엄마에 대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는데 죽음에 이르게된 과정이나 어릴적 추억 같은 것에 대한 생각보다 아빠의 삶을 담담히 복기해 봤던 것이 생각난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그 간의 추억이나 현실 생활, 미래에 대한 고민들 같은 것에 대한 생각이 많았는데, 막상 장례를 치르고 돌아와보니 한 사람으로서 아빠의 인생을 찬찬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작가의 글에서 그 때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릴때 영 호기심이 생기지 않던 것이 부모님의 인생 이야기인데, 막상 막을 내리니 찾아오는 아쉬움에 뒤늦게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보았지만 그것은 사건 현장에서 남아있는 단서를 바탕으로 추리해보는 일에 불과했다. 부모님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생각난다. 나의 삶도 부모님처럼 단편적인 경험 위에서, 시간이 꽤나 지나서야 재해석되고 기억되고 자기들 좋을대로 마음 한켠 어디에 놓여지겠지. 거기 까지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래도 좋다. 그리고 부모님 마음이 내 마음 같았거니 생각하면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개인적으로 사람 안 변한다는 단정적인 그 말을 정말 싫어한다. 그 말이 그렇게 많이 쓰이는 데는 이유가 있고, 핏대세워서 흥분할 필요 없는 말인데도 나는 핏대세워서 흥분하고 격렬하게 저항한다. 그렇다고 또 사람이 쉽게 변하는 것 같지도 않지만 사람은 생각보다 많이 변한다. 본인은 잘 모르는 경우도 많지만, 조용히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자신의 생각과 취향 그리고 신체의 세세한 변화까지 느낄 수 있다.
가끔 자기 자신의 변화는 알지 못하고 내가 언제 그랬냐고,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흥분하는 사람을 마주하게 될 때가 있다. 그 때 나는 황당하기보다 무섭다. 나도 가끔 비슷한 이유로 아니라고, 억울하다고 방방 뛸 때가 있는데, 상대방은 얼마나 황당할까. 그런 경험을 몇번하게 되면,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어릴적 내 모습 아니 10년 전 내 모습만 생각해봐도 내가 참 많이 변했구나 싶고, 괜시리 겸손해진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확신의 찬 생각도 바뀔 수 있고, 세상과 사회 그리고 사람을 바라보는 나 자신이 변한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조금은 겸손해지고 조금은 조심스러워지고, 확신에 찬 결기를 앞세우기보다는 곰곰히 한 번 더 생각해 보게되는 것 같다.
김영하 작가도 젊었을 적 호기롭게 확신하고, 단정하던 본인의 모습이 낮설게 느껴졌다고 하는데 공감이 많이 되었다. 조금더 여유있고 신중한 사람이 된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도 막연히 나이가 들었다는 느낌에 조금은 슬프다.
젊었을 때는 확실한 게 거의 없어서 힘들고, 늙어서는 확실한 것밖에 없어서 괴롭다.
내가 졸업하고 취업 할 때 쯔음에는 공무원이 굉장히 인기가 많았다.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는데, 나는 그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평생 안정적이고 싶지 않았고, 죽을때까지 일하고 싶었고, 영원히 사랑하고 싶었다. 나는 그것이 삶의 빛나는 불 꽃이라고 믿었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막상 결과적으로 돌이켜보면 나는 굉장히 안정적으로 살아버렸다. 특히 겉으로 들어나는 사실들은 더욱 그렇다. 처음 회사에 들어갈때는 35살 전에는 퇴사하고 싶었다. 결혼하고 아빠가 되면서 40까지는 다녀야겠다 싶었는데, 이제 가끔 정년을 생각해본다. 물론 나는 여전히 모험을 동경하고 울타리를 나가서 역경을 해쳐나가는 꿈을 꾼다. 단지 요즘은 그게 정말 꿈처럼 남겨질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슬프다. 너무 슬퍼서 자려고 누워 말똥 말똥 눈을 깜빡일때 가끔 눈물이 찔끔 고인다. 하지만 내가 그런 이야기를하면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은 별로 없고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는 것이 또 하나의 슬픔이다.
형 같은 김영하 작가가 이 책의 소개글에 일생에 한 번 쓸 수 있을 글이라고 썼는데, 참 공감이 되었다. 인생의 어느 순간 그 지점을 지날 때 느끼는 그 마음. 그 기분을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