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손님
세 번째 여행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에서 아쉬웠던 점을 조금 보완했다.
바로 약간의 시간적 여유. 저녁 식사 후 후다닥 식탁을 정리하였더니 저녁 8시부터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일을 하면서 아이와 함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에게도 노력이 많이 필요한다.
퇴근 후 기다리는 집안 일과 하루 종일 쌓인 피로를 풀고 싶었지만 모든 것을 다 얻을 수는 없는 법.
현재를 유지하고 새로운 것을 한다는 것은 문장에서도 어긋난다. 현재 유지라는 장면에 새로운 일이 들어왔으니 시간과 일들을 다시 정렬해야 했다. 그래서 휴식을 포기했다. 하지만 의외로 재미있었다. 어찌 보면 다른 형태의 휴식이지 않을까 싶다.
특히 아이의 입장을 들어보는 것이 제일 재미있고 한 권의 책을 읽었다는 뿌듯함은 덤이다.
오늘의 여행지는 [마지막 손님]이다.
이번에는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이건 또 무슨 의미일까? 어떤 의미로 마지막 손님일까?
개발로 인해 가게가 사라지는 내용일까? 아니면 어느 날 마지막 손님의 사연이 있는 내용일까?
두 번째 여행지에서 너무 울었던 나머지 살짝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스타트는 아이가 먼저 했다.
[한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낡은 옷 속으로 파고들지만 그녀는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힘차게 걸어갔습니다.]
"갔습니다가 아니라 갑니다"
"걸어갑니다."
이제껏 지켜보면 읽을 때 가장 많이 틀린 부분은 동사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소함은 상당히 중요하다.
첫째 딸의 경우 시험이 끝나면 울 때가 많다. 시험 문제를 잘못 봐서 틀렸다고.
예나 지금이나 시험 문제 잘못 봐서 틀린 건 변하지 않나 보다.
어릴 적 나 역시 같은 경험이 있었지만 공감해 주는 쪽을 택하지 않고 냉정하게 대하는 쪽을 택한다.
공감이 아이에게 당연하다는 부정을 낳을까 봐.
"실수도 실력이다. 평소에 문장을 꼼꼼히 읽었는지 한번 생각해 봐."
때론 살면서 어떤 경우에 냉정하게 어떤 경우에 따뜻하게 해줘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부모가 되었어도 엄마가 되었어도 모르는 것은 참으로 많다.
현재의 선택이 미래의 모습을 만들어 간다.
지금 책을 꼼꼼히 읽으면 시험 문제를 잘못 보는 실수가 줄어들지 않을까?
그럼 첫째 딸에게 했던 냉정한 말을 안 하지 않을까?
틀린 부분을 하나씩 수정하고 또 수정해 간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아이에게 질문도 해본다.
"나연아, 한 장 읽는 동안에 모르는 글자는 없었어?"
"아니 있었어."
"어떤 글자야?"
"명량한, 상냥한, 파고들지만"
한 장만 읽었을 뿐인데 생각보다 많은 단어가 나왔다. 어찌 보면 사전을 찾아보면서 정확한 의미를 알려주는 것이 좋겠다 싶지만 엄마표 설명으로 끝을 냈다.
3번째 여행지에 도착할 때까지 아이가 모르는 단어를 적어 보았다.
'명량한, 상냥한, 파고들지만, 신세만, 동안, 유니폼, 사복, 점잖은, 공교롭게도, 초조한, 괴롭기도, 내심, 난처했습니다. 씹기, 성의, 새삼스럽다. 응할 수, 매상, 분주, 꽤, 응석, 내색, 상인, 불현듯, 형언할 수 없는. 가까스로, 공장장이, 우러난, 회상, 망설이다가, 스스럼없이, 멋 부릴, 약도, 시내, 유감'
정말 많은 단어들이 나왔다. 공감 가는 어려운 단어도 있었고 이런 단어도 모르는구나 하는 것들도 있었다.
설명은 의외로 형사와 부사가 힘들다. 국어사전처럼 정확히 알려주기는 힘들었지만 시간이 허락하여 나 역시도 단어의 뜻을 머릿속에서 생각하며 알려주었다.
책을 모두 읽고 났을 때는 뿌듯함이 생겼다. 그전의 여행에서는 무언가 쫓기듯이 가는 느낌이었으나 이번 여행은 완전 차분히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여유로운 여행이었다.
시간이 여유로우면 아이도 나도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다.
다행히(?)도 마지막 손님을 읽을 때는 눈물까지는 흘리지 않았다.
다만 아들이 얼마 남지 않는 어머니를 위해 드시고 싶은 과자를 폭설을 뚫고 사 왔지만 드시지 못하고 보내드린 점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그런 아쉬움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게이코라는 직원이 손님의 입장을 공감하여 그 손님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이야기였다.
다소 아이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는데 아이에게 느낀점을 물어보니 하늘나라에 가서 과자를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한다. 역시 "Simple is best" 다. 복잡한 내 생각은 단순한 아이의 생각에서 잊어버렸던 옛 생각을 다시 배운다.
여행을 끝내고 아이의 독후감을 읽어봤다. 어찌 이런 독후감이 나올 수 있는지. 아이의 독후감은 정말이지 급하기 짝이 없었다. 많은 것이 생략되었고 책의 내용을 두서없이 몇 개만 적고 느낀 점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몇 개를 지적했지만 이미 써버린 독후감을 모두 지울 수는 없었고 다음 독후감에 참고해 쓰라고 말해줬다.
세 번째 여행이지만 아이에게는 다소 벅찬 여행인 듯한다. 읽는 연습은 어느 정도 됐지만 내용을 정리하는 과정은 읽는 것보다 더 많이 힘든 듯하다.
언제가 되어야 매끄럽게 고쳐질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그 길은 멀고도 가파른 듯하다.
먼 길을 생각하면 이 여행을 완주하지 못하고 포기할 듯 해 현재의 여행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독서의 끝이 있겠는가? 이렇게 하나하나의 여행이 나를 만들어가는 것이지 않겠는가?
너무 급한 마음을 내려놓기로 한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