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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no Jul 10. 2020

갑자기 낯설어지다

 어느 순간 공기가 차가워졌다. 낯설어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23년 동안 상대가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을 망각할 정도로 가까운 존재가 말이다. 이 존재와 떨어져 있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보이지 않아도 들렸고, 들리지 않아도 생각났다. 심지어 나를 위로하며 구원하기도 하고 질책하며 단죄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나는 전적으로 이 존재에 구속되어있었다. 아직 그것과 함께 지내는 것에 낯섦을 가장한 불편함을 느낀 사건이 내게 좋은 일인지 아닌지 관해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속에선 엄청난 환희가 일어났다. 마치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삶을 옭아매고 있는 그 존재를 잘라버릴 방법이라도 찾았다는 듯이.



 알렉산더 대왕의 칼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내게 쥐어졌다. 너무 당황스러워 칼이 내 손에 들려 있는지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당시 나는 프랑스인과 언어교환 중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프랑스어로 오늘 하루의 기분은 어떤지, 왜 한국어와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했는지 따위의 질문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새로 배운 프랑스어 표현도 써보기도 하고,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그분은 친절하게 답해주셨다. 문제는 그다음에 발생했다. 우리의 언어가 한국어로 바뀌면서 엄청난 거리감을 느꼈다. 존댓말이 원인인 듯했다. 프랑스어로 대화를 할 때도 친밀감을 느끼진 못했지만 그래도 불편하진 않았다. 하지만 언어가 한국어로 바뀌면서 관계의 거리가 벌어지고 약간의 불편함이 올라왔다. 이전에 느끼지 못한 이상한 경험이었다.



 이는 분명히 불편한 경험이었다. 왜냐면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불편함의 대상이 한국어였기 때문이다. 좀 더 확장해보자면 나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는 한국 문화의 일부에 거부감을 느낀 것이었다.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 때, 마음 한편에선 환희가 일어났다.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 문화를 완전히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몸에 너무 바짝 달라붙어 있어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던 것을 조금 떼어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경험으로 자신과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넓어지리라 생각한다. 


 다시금 그때 느꼈던 감정을 곱씹어 보면서 여행하며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행은 불완전하게나마 모국어와 익숙한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새로운 땅에 설렘과 두려움을 갖고 발을 내딛는 행위이다. 이런 경험이 선사하는 낯섦으로 자신을 더 잘 알게 된다. 그렇기에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면 결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그리고 이를 통해 문화 속에 숨어있어 잘 보이지 않는 구속들에서도 벗어나 좀 더 자유로워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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