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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no Jul 20. 2020

나만 재밌는 것

다름 속에서 같은 걸 찾다

 우리는 모두 ‘나만 재밌는 것’ 하나쯤 갖기 마련이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혼자 빵 터지기도 하고, 어떤 수업을 들으면서 남들은 다 몸이 뒤틀릴 정도로 지루해 죽으려고 하는데 나만 눈이 반짝반짝할 수 있다. 누군가는 이런 모습이 주위 사람에게 별나 보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 행동을 억압한다.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 없다. 엄밀하게 말하면 나만 재밌는 건 존재하기 힘들다. 설사 그 감정을 공유할 사람이 한국에 없더라도 지구 상 어딘가에 존재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만 재밌다고 ‘느끼는’ 것만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이를 부정하고 외면한다면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그리고 세상 어딘가 있을지도 모르는 소울 메이트를 만날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나는 공유하지 못하는 즐거움 즉 쓸쓸한 희열을 끝없는 망각 속에 작은 깨달음에서 느낀다. 사라지는 정보와 그걸 붙잡으려는 자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 바로 외국어 공부이다.  


펴고 읽기만 하면 잠드는 데미안 불어 버전


 난 잘 까먹는 사람이다. 특히 사람 이름은 정말 못 외운다.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못 보거나 이름을 거의 부를 일 없는 지인의 이름은 잊어버린다. 프랑스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할 때는 상황이 더 심했다. 수많은 중국식 이름, 아랍식 이름, 아프리카식 이름 등을 외워야 했지만, 듣는 즉시 까먹었다. 그렇기에 항상 나는 그들의 얼굴을 보며 인사해야 했고, 뒤에서 소리쳐 그들의 고개를 돌리는 일은 불가능했다. 이렇게 기억을 잘 못 하는 내가 외국어를 공부하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물론 이름보다는 상황이 낫지만, 단어와 문장을 끊임없이 외우지만, 다음에 그걸 써야 할 때는 이미 머릿속엔 외웠다는 흔적만 남은 채 정보는 사라진다. 하지만 힘들기만 하다면 외국어 공부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


까먹지 않으려는 사투

 외국어는 익히기 힘들지만,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재미를 느낀다. 큰 재미는 외국인과 대화를 하며 언어 실력이 향상되었다는 걸 인식할 때 느낀다. 잔재미를 느끼는 요소는 많은데 이 중에 ‘나만 재밌는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를 이야기해보겠다.


 우리는 외국어를 공부할 때 한국어와 차이점에 집중하며 공부한다. 프랑스어도 얼핏 보면 한국어와 차이점이 훨씬 많은 언어인 듯하다. 그렇기에 주어의 성과 수에 따라 형용사와 동사 변하는 프랑스어에서 한국어와 공통점을 발견한다는 것은 말도 안 통하고 음식도 안 맞는 이국땅에서 김치찌개 집을 발견한 것과 같다. 김치찌개의 맛은 한국과 똑같을 때도 있고 약간 아쉽지만 비슷한 맛이 날 때가 있다.


 할머니가 끓여주신 김치찌개를 매일 먹는다면 진정한 그 음식의 맛과 소중함을 알기 힘들다. 외국어 공부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비로소 먼 타지로 떠나야 그 맛과 의미가 떠오르듯이 말이다. 프랑스어를 공부하다가 ‘Plus ou moins’이라는 표현을 만났다. 영어로 곧장 ‘more or less’로 직역되며 한국어론 ‘다소’다. 맛이 똑같은 언어이다. 그리고 맛이 비슷한 표현들을 발견했다. ‘faire boule de neige’ 직역하면 ‘눈을 뭉치다’ 혹은 ‘눈 뭉치를 만들다’ 정도 될 듯하다. 실생활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또 ‘Soulever des montagnes’, 직역하면 ‘산들 혹은 산맥을 들어 올린다’라는 의미이다. 엄청난 노력을 들여 이루기 힘든 목표를 달성한다는 의미로 쓰이기에 우리나라의 우공이산과 뜻이 같다.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눈이 뭉쳐져 커지는 현상을 사건이 커지고 물건의 양이 많아지는 의미로 사용하고 산을 움직이는 사건을 엄청난 노력으로 무엇을 힘들게 달성한다는 사실을 내포한다는 게 신기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내 말이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면 이건 명백히 나만 재밌는 영역의 일부분이고 난 세상 어딘가에 있을 소울 메이트를 찾아 떠나야 할 운명인 것이다.


 여전히 누군가는 이런 개인의 특성에 반감을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50%에 육박하는 성인이 일 년의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렇기에 꾸준히 책을 읽고 브런치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는 분이라면 이미 사회에서 쉽게 공감을 얻지 못할 쓸쓸하지만 소중한 즐거움을 만끽하고 계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자신만의 단단한 취향과 가치관을 형성하되, 자신만의 세계에 매몰되지 않고 사회와 소통하고 공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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