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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no Jul 30. 2020

느끼지만 단순히 정의할 수 없는 관계

헤세의 데미안과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desafinado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났는데 언어가 달라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는 건 엄청난 비극이다. 마음에 든 대상이 더 매력적일수록 사건은 더욱 심각해진다. 불행하게도 나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1분 전에는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모르던 대상에 빠져버린 것이다. 나에게 편안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여유가 넘쳤고 자유로웠다. 그걸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일상을 초월한 기분을 느꼈다. 행복하게도 그 존재는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아니 속삭였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내가 전혀 모르는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이었다. 온 신경을 곤두세워 경청했다. 한 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모든 단어는 머릿속을 방황하다 흩어져버렸다. 스페인어 같기도 하고 프랑스어처럼 들리기도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에 속하지 않은 존재였다. 사랑을 하면 그 대상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구가 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본능에 이끌려 그녀에 대해 알아보았고 내가 들었던 언어가 포르투갈어라는 걸 찾아냈다. 그리고 그녀의 국적은 브라질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내가 사랑에 빠진 대상이 이파네마 해변에서 만난 매력적인 여성이 아니었다. 만일 그랬다면 언어가 통하지 않아 좌절했을지도 모른다. 그 존재는 다행히도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이 작곡한 보사노바 노래들이었다.

보사노바 장르를 개척한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그의 노래 desafinado를 들었을 때, 비록 가사의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노래 자체에서 느껴지는 편안함 자유로움 그리고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자꾸 헤세의 데미안이 떠올랐다. 당시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데미안과 desafinado와 내 영혼이 만나며 일어나는 동일한 화학작용에 대해 설명할 수 없었다. 언뜻 보면 이 둘은 섞일 수 없어 보였다. 데미안을 읽으면서 한계를 깨고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은 열망이 일어났지만, 조빔의 보사노바는 마음의 안식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 각성과 이완 사이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낀 것이었다. 그래서 더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왜 틀을 깨고 더 큰 세상을 갈망하고, 긴장이 풀렸는지 말이다. 이 상반된 느낌의 알 수 없는 연관성은 분명했다. 바로 자유였다. 항상 자유롭고 싶었던 나에게 데미안은 나답게 사는 자유를 쟁취하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켰고,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보사노바는 자유를 느끼게 해 주었다. 상반된 두 감정은 ‘자유에 대한 갈망’이라는 같은 원인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어린 나에게 자신으로 사는 법을 알려준 헤르만 헤세

 전혀 다른 감정들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되었다. 또한 새로운 일을 하고 다채로운 감정을 느끼는 경험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갈망하는 자유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자유라는 건 연대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 같다. 나만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불평등은 도처에, 심지어 내면에 침투해 있으며 조금이라도 약해진 틈을 타 우리를 공격하고 억압한다. 이상적인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는 없다. 그렇다고 더 자유로워지기 위한 노력을 멈추면 안 된다. 불안전함 속에서 최선을 위해 노력하고, 그건 나만이 아닌 타인의 자유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한 원론적인 질문을 탐구하며 연대를 통해 어떻게 함께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를 알아보아야겠다. 오랜만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해 준 헤세와 조빔에게 감사하다.              

https://youtu.be/tCMhuN3053o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desafin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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