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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no Aug 18. 2020

나와 나의 다툼

 책을 읽으며 이유 모를 긴장과 떨림이 느껴진다. 책에 담긴 내용에 연신 공감하고 깨달음을 얻지만, 그것이 마음 깊숙이 파고들지 못한다. 딱딱한 무언가가 따스한 위로의 침투를 가로막고 있는 것일까?


 요즘 내 의식은 난생처음으로 소설을 써보려는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당장 9월에 있을 시험 준비하랴, 다음 학기 공모전, 대외활동, 동아리 생각하랴 바쁜데 글쓰기에 집중할 시간이 어디 있어? 일단 지금은 눈앞에 닥친 일부터 하나씩 해결하자. 나중에 소설 쓰기에 온전히 집중할 시간이 있을 거야.”


 그 ‘나중’은 절대 오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의식에 납득될 때쯤에 무의식은 ‘생텍쥐페리’를 머릿속에 흘려보낸다. 비행기 조종사이자 작가였던. 의식과 무의식의 대립이 시작된 것이다. 싸움은 내면에 엄청난 혼란을 야기한다. 내적 혼란은 엄청난 에너지 소모와 고통을 수반하지만,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이 과정을 통해 꿈에 관련해선 대개 무의식이 옳다는 걸 배웠다. 무의식은 자주 나도 모르게 갈망하고, 또 의식과 현실에 매몰되어 숨을 헐떡이고 있는 내 영혼의 소리를 들려준다. 무의식은 작지만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만일 이번에 소설을 완결하지 못한다면, 평생 쓸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 원래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은 꼭 하지 않아도 되거든. 이제 잘해야 한다는 강박증과 완벽주의를 내려놓고, 9월에 있는 자격증 시험에 대한 걱정도 꾸준함으로 극복하고 네가 쓰고 싶은 소설을 마음껏 써봐. 설사 엉망인 작품이 나오더라도 너한텐 엄청 소중한 경험이 될 거야.”


 사실 이 말이 보잘것없는 글을 쓸 거라고 두려워하는 내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인지 무의식에서 태동한 건지 확실치 않다. 하지만 무의식이 일상의 무미건조함과 현실의 차가움과 맞서 마음에 따뜻한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건 확실하다. 꿈이 적절한 온도의 희망이 차갑게 식지 않도록 말이다. 


 그럼 내가 할 일은 무의식이 알려준 나만의 존재가 간직한 색깔과 향기를 의식에 스며들도록 하는 것이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자신을 들여다보며 ‘나’라는 존재를 깨닫고, 꾸준함으로 잠재력을 발견하고 싶다. 그리고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면서 느끼는 두려움과 완벽이란 허상에 대한 맹목적 추종을 접어두고 글쓰기 자체에서 행복을 느끼길 원한다. 또한 결코 이번 생에는 끝나지 않을 듯한 의식과 무의식의 다툼에서 오는 고통을 스트레스로 치부하지 말고 받아들이겠다. 이 영감과 추동 그리고 계획과 절제가 대립하고 섞이며 성장할 것이다. 


 글쓰기에 대한 무의식의 생각을 들어보다 지금 내가 갈망하고 있는 걸 알게 되었다. 어디론가 훌쩍 배낭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것을. 일상의 반복성과 무미건조함에 질린 듯하다. 이 시국에 여행을 떠날 순 없기에 일상에 새로움을 채워줄 무언 갈 찾아야겠다. 아마 그게 산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얼른 코로나가 전 세계에서 종식되어 마음껏 배낭여행을 즐기며 우연과 무계획이 주는 행복을 느끼고 싶다. 

니스의 골동품 시장/ 시간의 흐름을 온몸으로 만끽했던 망통에서 니스 가는 버스 안
니스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카니발도 아니고 아름다운 마을도 아닌 바로 이 파도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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