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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no Mar 13. 2021

알을 깨려고 했지만, 용기가 사라졌다

흔들리며 단단해지기

고독은 운명이 인간을 자기 자신에게로 이끌기 위해 거치는 길이다.
- 차라투스트라의 귀환, 헤르만 헤세
 

 ‘당연한 건 존재하지 않는다. 불합리한 고정관념을 깨고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내가 영문학과 프랑스언어문화를 전공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외국어를 공부하고 다른 나라의 문화를 접하며 끊임없이 다름과 조우하며 성장하고 싶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공부하려고 책을 펴면 몸이 차가웠다가 뜨거워짐을 반복하고 장은 예민해진다. 가슴은 답답하고 다리는 떨린다. 이제 곧 프랑스어 C1 시험인데 어휘를 너무 모르는 듯하고 쭉쭉 오르고 있던 작문 실력도 정체기인 듯하다. 한번 떨어진 시험이기에 부담은 배가 되어 빼곡히 적인 불어 단어를 보면 속을 울렁인다. 


 필요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나 자신을 위로한답시고 ‘저번 시험에 3점 모자라서 떨어졌잖아. 꾸준히 했으니까 붙을 거야!’라는 말을 건넸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을 침대에 누워선 해결할 수 없었다. 무작정 집을 나와 하염없이 걸었다.


 산책하니 드디어 피가 돌았는지 머리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뇌에서 혈관을 타고 질문 하나가 흘러왔다. ‘이 시험이 내게 진짜 중요한 시험인가?’ 가슴은 그렇다는 대답을 했고 다시 머리로 들어간 피는 답을 가지고 왔다. ‘C1 있으면 좋지. 어디 가서 불어 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도 있고 혹시 프랑스로 유학 가려면 필요하잖아. 그리고 시험 준비 안 했으면 네가 그렇게 불어 공부하겠냐? 저번 시험 상떼즈랑 이번에 하는 거 비교해봐. 훨씬 늘었잖아’ 시험을 잘 봐야 한다는 강박에 시험 준비를 하면서 성장한 불어 실력을 하마터면 무시할 뻔했다. 또한 이 세상엔 100%는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받아들였다. 운 나쁘면 시험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끝까지 잘 준비하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붙을 가능성은 더 커지고 적어도 실력은 는다. 운동장을 돌며 생각이 깊어질수록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가 느려지기는 반복했다.


  이번 프랑스어 시험도 어학 실력 향상을 위한 일부 과정이라고 받아들이니 자격증을 따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해 통제되지 않던 심장 박동이 잦아들었고 다리의 간헐적 떨림도 줄어들었다. 내가 붙을지 떨어질지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했고, 매일 해야 할 분량의 공부를 꾸준히 해나가는 게 최선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단순하지만 잊고 있었던 사실을 깨닫자 끊임없이 주변의 알을 깨고 다름으로 더욱더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한 용기가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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