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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no Feb 05. 2021

빙판의 응원

미끄러지길 잘했다!


 코로나로 활동이 제한된 요즘,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이 마음 한쪽에 자신의 꿈과 욕망을 담고 살아가는 듯하다. 야외활동과 사람 만나는 일이 줄어 오감이 무뎌지고 삶은 무료해진다. 곡선을 그리며 요동치던 삶이 직선으로 펴져 한없이 앞으로 나가기만 하면 뜨거웠던 욕망은 방치되고 불길은 서서히 잦아든다. 몸과 마음이 한기를 느끼는 요즘 뜻밖의 존재가 내면의 불꽃에 잘 마른 땔감을 던져 넣었다. 


 도로엔 간밤에 내린 눈이 꽤 쌓여 있었다. 뽀득뽀득 눈을 밟으며 집을 나섰다. 차가운 바람과 뜨거운 입김을 맞으며 안경은 하얗게 김이 서렸다. 김이 서리지 않은 안경 아랫부분으로 길을 보며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길 곳곳은 살짝 얼었다가 다시 녹은 눈 때문에 빙판이 되어있었다. 집을 떠나고 5분 정도 되었을 때, 나는 빙판을 마주했다. 그것도 내리막길에서. 아주 살금살금 걸어 내려갔다. 거의 다 내려왔을 때 골목 한가운데에서 한 커플이 차를 기다리고 있어 무언 갈 덮어 놓은 고무판을 밟고 가야 했다. 고무판을 밟자마자 발은 쭉 미끄러졌고 순식간에 도로에 누워버렸다. 주위에 사람이 많았기에 창피함은 정신과 육체를 지배했고 곧장 일어나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손을 털고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말이다. 


 다행히 몸엔 이상이 없었다. 다만 땅을 짚은 손이 얼얼했다. 창피함이 가시자 미끄러지면서 분비된 아드레날린이 활기찬 기운을 불어넣었다. 한껏 들뜬 채로 생각했다. ‘왜 빙판에 미끄러졌을 때, 내 몸을 걱정하기보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며 창피해했을까? 어차피 그들에겐 난 겨울철 빙판에서 넘어지는 많은 사람 중 한 명이지만, 나에겐 유일한 존재인데.’ 답은 뻔했다. ‘필요 이상으로 남의 눈치를 보지 말자. 어차피 사람들은 남에게 관심이 없다.’ 이 식상한 진리의 적용 범위가 삶 전체로 넓어지자 위로로 다가왔다. 막 20대 중반이 되어 내가 선택한 일을 해도 되는지 불안하고 무언 갈 빨리 하고 싶지만,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내게 사회가 정한, 아주 작은 사회인 한국 사회의 나이대별로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틀에 자신을 맞추지 말고 마음이 원하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는 응원을 건넸다. 이상의 불꽃을 마음에 잘 간직하고 꾸준히 자신을 관찰하고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꾸준히 열정적으로 준비한다면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더 넓은 세상에서 나와 타인이 함께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덕분에 기분 좋게 데워진 마음으로 도서관을 갈 수 있었다. 빙판은 차갑고 날카로웠지만, 빙판이 건넨 응원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무엇보다 사소한 결정은 머리로, 큰 결정은 가슴으로 내리면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연필 하나로 가슴 뛰는 세계를 만나다, 애덤 브라운




차가운 겨울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따뜻한 불꽃이 타오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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