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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no May 03. 2021

원치 않은 시작일지라도

드디어 때가 됐다

 자신의 행동을 바꾸고 싶다면 익숙한 것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라고 한다. 익숙함을 떠난다는 행위는 항상 스트레스를 수반하지만,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막 20대 중반으로 들어선 나는 지금 어떤 거대한 변화 앞에 놓여있다. 오늘은 군대에 입대하는 날이다. 이 경험은 분명히 자신을 변화시킬 좋은 기회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군대의 불합리성과 뉴스에 나오는 장병 인권 침해 소식으로 곧 맞닥뜨릴 미래가 더욱 어둡게 보였다. 


 쉽사리 예측할 수 없고 매우 힘들 거라고 짐작되는 원치 않는 시작 때문에 걱정되고 불안했다. 친구들과 만나 술을 마시고 재밌는 이야기를 하면서 며칠 후 입대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순간을 즐기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에 집중하는 시간도 잠시, 먹먹함과 씁쓸함이 목구멍 아래서 올라왔다. 엄청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을 자주 느꼈다. 다가올 미래와 감정이 하나로 합쳐지지 않고 조금 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장소와 멀리 떨어진다는 사실에 슬펐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고, 잃어버릴 일상과 다가오는 통제된 환경으로 걱정은 됐지만 필요 이상으로 불안하진 않았다. 이렇듯 입대라는 사실은 한 감정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과 조금 떨어진 채 이동하며 이상야릇한 기분을 자아냈다. 


 알 수 없이 다양한 감정이 녹아있는 이 상태에서 농도가 가장 진한 건 아쉬움과 허함이었다. 익숙함을 포기해야 한다는 아쉬움이었고, 앞으로 원하는 걸 마음대로 할 수 없기에 밀려드는 공허함이었다. 충분히 배우지도 경험하지도 못하고 자유를 통제받으며 생각은 획일화될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들었다. 성장하고 싶은 욕망이 가로막힐까 봐 걱정한 듯했다.


 지금도 입대한다는 생각에 약간 걱정은 되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마음은 이전보다 훨씬 가라앉았다. 그건 텅 빈 마음을 친구들과 가족들이 채워주었기 때문이다. 군 생활을 응원하고 놀리는 연락과 만남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먹이고 싶은 가족들의 사랑으로 충만해졌다. 이렇게 얻은 자신감 얻자 군 생활에 관해 궁금한 점들이 떠올랐다. ‘군대라는 거대 조직 안에서 어떤 일들을 겪을까? 어떤 사람을 만나고 누구와 관계를 맺을까? 군 생활이 끝날 때 이 경험은 어떤 기억으로 삶의 일부로 남을까? 등등’ 그리고 결심했다. ‘이전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했다면 입대하고 나선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며 좀 더 자신에게 어울리는 미래를 살기 위한 방향성을 모색할 거야. 충분히 생각하고 차근차근 준비해야지!’ 나름의 질문들이 생기고 결심이 서자 큰 그림이 그려졌다. 비록 원치 않는 시작인 입대를 앞두고 작은 희망은 심어졌고 그걸 꽃피우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잘려나간 머리카락과 미쳐 다 읽지 못한 책들 - 아쉬운만큼 적응 잘하고 성장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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