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때가 됐다
자신의 행동을 바꾸고 싶다면 익숙한 것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라고 한다. 익숙함을 떠난다는 행위는 항상 스트레스를 수반하지만,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막 20대 중반으로 들어선 나는 지금 어떤 거대한 변화 앞에 놓여있다. 오늘은 군대에 입대하는 날이다. 이 경험은 분명히 자신을 변화시킬 좋은 기회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군대의 불합리성과 뉴스에 나오는 장병 인권 침해 소식으로 곧 맞닥뜨릴 미래가 더욱 어둡게 보였다.
쉽사리 예측할 수 없고 매우 힘들 거라고 짐작되는 원치 않는 시작 때문에 걱정되고 불안했다. 친구들과 만나 술을 마시고 재밌는 이야기를 하면서 며칠 후 입대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순간을 즐기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에 집중하는 시간도 잠시, 먹먹함과 씁쓸함이 목구멍 아래서 올라왔다. 엄청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을 자주 느꼈다. 다가올 미래와 감정이 하나로 합쳐지지 않고 조금 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장소와 멀리 떨어진다는 사실에 슬펐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고, 잃어버릴 일상과 다가오는 통제된 환경으로 걱정은 됐지만 필요 이상으로 불안하진 않았다. 이렇듯 입대라는 사실은 한 감정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과 조금 떨어진 채 이동하며 이상야릇한 기분을 자아냈다.
알 수 없이 다양한 감정이 녹아있는 이 상태에서 농도가 가장 진한 건 아쉬움과 허함이었다. 익숙함을 포기해야 한다는 아쉬움이었고, 앞으로 원하는 걸 마음대로 할 수 없기에 밀려드는 공허함이었다. 충분히 배우지도 경험하지도 못하고 자유를 통제받으며 생각은 획일화될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들었다. 성장하고 싶은 욕망이 가로막힐까 봐 걱정한 듯했다.
지금도 입대한다는 생각에 약간 걱정은 되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마음은 이전보다 훨씬 가라앉았다. 그건 텅 빈 마음을 친구들과 가족들이 채워주었기 때문이다. 군 생활을 응원하고 놀리는 연락과 만남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먹이고 싶은 가족들의 사랑으로 충만해졌다. 이렇게 얻은 자신감 얻자 군 생활에 관해 궁금한 점들이 떠올랐다. ‘군대라는 거대 조직 안에서 어떤 일들을 겪을까? 어떤 사람을 만나고 누구와 관계를 맺을까? 군 생활이 끝날 때 이 경험은 어떤 기억으로 삶의 일부로 남을까? 등등’ 그리고 결심했다. ‘이전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했다면 입대하고 나선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며 좀 더 자신에게 어울리는 미래를 살기 위한 방향성을 모색할 거야. 충분히 생각하고 차근차근 준비해야지!’ 나름의 질문들이 생기고 결심이 서자 큰 그림이 그려졌다. 비록 원치 않는 시작인 입대를 앞두고 작은 희망은 심어졌고 그걸 꽃피우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