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환상 같은 현실
‘첫 경험’. 이 단어는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보다 인간에게 강한 환각 작용을 일으킨다. 새로움이란 마약에 취하기 위해 누군간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기도 하고, 줄기차게 다른 이성을 갈망하기도 하며, 때론 미지의 세계로 떠나기도 한다. 새로움이 더 큰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경험을 본인이 주체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군인인 내게 지난 삼 개월은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할 환각을 선사하지 못했다. 첫 휴가를 나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세상이 온통 아름답게 보이는 필터를 자는 동안 각막에 이식한 게 분명했다. 시외버스터미널에 앉아서 보는 뒤뚱거리는 비둘기와 뚜렷한 특징 없이 천천히 걷는 노인의 걸음걸이도 아름다운 재즈로 느껴졌다. 날씨는 우중충했고 터미널은 낡았지만, 그 모두가 자유의 향기를 내뿜고 있었고 사랑스러웠다. 버스에 몸을 싣고 커튼을 열어젖힌 뒤 바깥세상을 열심히 눈에 담았다. 산에 자욱한 안개가 하늘로 승천하고 있는 걸 마주하며 세상은 역시 아름답다고 속으로 되뇌고 있었다.
드디어 집 앞에 당도했다. 한 손에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엔 가족에게 줄 선물을 한가득 들고 있었고 땀은 배를 타고 흐르고 있었다. 오랜만에 온 집의 외관을 사진에 담고 곧장 집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난 발이 지면으로부터 족히 오 센티미터는 붕 뜨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서둘러 군복을 갈아입고 할머니가 해주신 불고기와 청국장을 먹었다. 그래도 정신이 차려지지 않았다. ‘눈앞에 보이는 이 집이 진짜 내 집일까, 내가 정말 집에 온 걸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다시 눈을 뜨면 부대가 아닐까?’ 밥을 다 먹고 침대에 눕자 또 ‘내가 입대를 하긴 한 걸까?’라는 말도 안 되는 질문이 떠올랐다. 한 5초 정도 이 질문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이내 옷걸이에 걸려있는 군복을 보고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두 현실 사이에 놓인 간극을 어쩌지 못하고 방황하며 하마터면 장자의 호접지몽을 이해할 뻔했다.
우린 가끔 새로운 환경에 툭 떨어졌다가 한참 있다가 익숙한 곳으로 기어 나오는 경험을 한다. 신기하게도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느끼는 이질감보다 익숙한 곳으로 돌아온 뒤에 느끼는 낯섦이 더 큰 환각 작용을 일으킨다. 이전에 이곳에 머물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지 않아서 느끼는 감정일까, 아니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밀려오는 행복을 이렇게 느낀 것일까?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익숙함 속에서 경험한 ‘처음’은 어지러웠고 아찔했고 행복했다.